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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 자동경보 오작동으로 ‘헛발질’ 출동만 하루 60~140건

중앙일보

입력

화재 진압 중인 소방관 [중앙포토]

화재 진압 중인 소방관 [중앙포토]

서울 중부소방서 소방관 김모(52)씨는 최근 황당한 일을 겪었다. 노인요앙시설에서 화재가 발생했다는 정보가 들어와 급하게 출동했는데 현장에 도착해 보니 춤추고 노래 부르는 잔치가 한창이었다.

알고 보니 할머니가 신발을 신다가 뒤로 넘어가서 ‘자동화재속보설비’ 기기를 잘못 건드려 자동으로 화재 접수가 된 것이었다. 이 날 노인 시설의 행사가 있어 사무실에 상주하는 직원이 없어 정말 화재가 발생했는지 확인 할 수가 없었다. 꼼짝 없이 화재와 같은 규모의 장비와 인력이 투입됐다.

기계 오작동으로 출동만 하루 60~140건 

소방청 등에 따르면 이처럼 기계 오작동으로 잘못 출동하는 사례가 하루 평균 60~140여건에 달한다고 한다. 흔히 알고 있는 화재경보기가 오작동해 출동하는 경우도 포함된 수치다. 당국은 자동화재속보설비 오작동으로 출동한 경우는 따로 집계하고 있지 않다.

화재속보설비 오작동의 이유는 제각각이다. 기계가 더러워졌다며 청소하던 물걸레로 닦아서 오작동이 발생해 출동하는 건 물론 쥐가 전선을 갉아먹거나, 고양이나 개가 전선 건드리는 경우도 있다. 건물이 노후 돼서 물이 새는 경우 습기가 차서 감지기에 잡히기도 한다.

아무런 외부 자극 없이 전산 자체에서 오작동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자동화재속보설비 오작동은 화재와 마찬가지로 한 번 출동할 때 소방차 16~17대, 소방관 48~50명이 나가게 된다. 한 개의 소방서에서 많으면 하루에 2~3번 씩 자동화재속보설비 오작동 건으로 출동하기도 한다.

자동화재속보설비가 뭐길래 

서울 용산구의 한 주상복합아파트에 설치된 자동화재속보설비. 권유진 기자

서울 용산구의 한 주상복합아파트에 설치된 자동화재속보설비. 권유진 기자

자동화재속보설비란, 자동화재탐지설비와 연동해 화재 발생 상황이 소방서에 자동으로 전달되도록 설계된 시스템이다. 서울의 경우, 자동화재속보설비를 설치한 건물에서 화재가 감지되면 자동으로 서울종합방재센터로 신고가 들어간다.

신고를 접수한 종합센터에서는 각 관할 소방서에 출동 지령을 보낸다. 이 때 신고가 들어온 건물에 전화를 걸어 진짜 화재 발생이 맞는지 확인한다. 24시간 상주하는 근무자가 있는 경우 오작동이 확인되면 출동하지 않지만 문제는 그렇지 않은 경우다.

자동화재속보설비는 24시간 상주인력이 없는 곳에 많이 설치돼 있는데, 이럴 경우 진짜 화재가 발생한 것인지 아닌지를 확인할 수 없다. 화재로 간주하고 화재와 같은 규모의 소방 장비와 인력을 보내야한다.

잘못 출동하면 위급 상황 때 공백 우려

잘못 출동할 경우 인력공백으로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앙포토]

잘못 출동할 경우 인력공백으로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앙포토]

오작동으로 잘못 출동할 경우 소방서 내에 인력 공백이 생겨 동시에 긴급한 사고가 발생할 경우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 용산소방서 소방관 박모(44)씨는 “지휘차는 각 소방서에 한 대씩 밖에 없다. 만약 자동화재속보설비 오작동 현장 출동했을 때 다른 쪽에서 긴급한 사고가 생기면 지휘차 공백이 생긴다”며 “지휘차가 없으면 큰 화재가 났을 때 통제가 안 될 수 있다”고 전했다.

서울에 비해 관할 면적이 넓은 지방의 소방서는 더 취약할 수 밖에 없다. 경남 소방본부 관계자는 “보통 하루에 20건 이상 자동화재속보설비 오작동 신고가 들어오는데 출동 갔다가 들어오는 시간이 1시간 넘는 경우도 있다”라고 밝혔다.

자동화재속보설비 신고가 아예 오작동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고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경우도 있다. 충북 소방본부 관계자는 “자동화재속보설비로 출동 지령 내려오면 ‘화재예방경계 출동’을 한다. 우선 펌프차 한 대만 현장에 나가서 화재인지 아닌지 확인하고 온다”고 말했다.

권유진 기자 kwen.y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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