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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결국 유엔에 손 내밀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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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미국이 자존심을 접고 유엔에 도움을 청했다. 거듭되는 사상자와 막대한 전비 부담 등으로 이라크 전후 처리를 더 이상 홀로 감당할 수 없겠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콜린 파월 미 국무부 장관은 3일 "이라크에서 유엔의 역할을 강화하고 각국의 병력 증파를 요청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채택해주기 바란다"고 밝혔다. 미국은 이날 결의안 초안을 공개했고, 안보리에 곧 제출키로 했다.

◇미군 주도 다국적군 창설=초안은 미군 지휘 아래 유엔이 승인하는 이라크 주둔 다국적군을 창설하고, 미국이 다국적군의 대표로 안보리에 6개월마다 보고하도록 했다. 미국이 임명한 이라크 과도통치위원회를 이라크를 대표하는 기구로 인정하도록 했다.

동시에 유엔 회원국들과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기구에 이라크 재건에 필요한 재정 지원을 촉구했다. 즉 유엔이 이라크 재건에 개입토록 허용하는 대신 국제사회가 '병력'과 '돈'을 지원토록 한 것이다.

미국의 결의안 제출 결정에 대해 뉴욕 타임스 등 미국 언론들은 일제히 "그동안 유엔을 배제한 채 미국에 의한 이라크 재건을 고집해온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어쩔 수 없이 유엔에 손을 내민 것"이라고 평가했다.

◇'군인'도 '돈'도 부족=미국의 '양보'는 정치.경제적 복구사업에 필요한 병력과 재정 부족 때문이다. 부시 대통령이 종전을 선언한 5월 1일 이후 사망한 미군만 해도 이라크 전쟁 중에 사망한 병사 1백38명을 넘어섰다.

그러나 미 국방부 발표에 따르면 실전 운용이 가능한 미군 내 33개 전투 여단 중 73%인 24개 여단이 해외에 배치돼 있다.

워싱턴 포스트는 "현재 33개 미 전투여단 중 이라크 병력을 교체할 여단은 3개에 불과하다"며 이라크에서 미군 병력을 증강시키기는커녕 기존 병력의 교체도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더구나 2003회계연도 미 연방정부의 재정적자가 사상 최대인 4천5백50억달러로 전망되는 시점에서 이라크 장기 주둔으로 인한 재정 압박도 부시 행정부를 괴롭히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는 지난 4월 통과됐던 7백90억달러의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비와는 별도로 미 정부는 약 6백50억달러를 이라크 전비로 의회에 추가 요청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독일, 끝까지 '파병반대'=쿵취안(孔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미국이 이라크 전후 복구를 유엔과 분담하겠다는 결의안을 제출한 것은 중국의 목표와 일치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러시아의 세르게이 이바노프 국방장관도 "러시아의 이라크 파병 여부는 국제사회의 협력 정도와 국제법이 이라크에서 얼마나 존중되느냐에 달려 있다"며 파병 가능성을 시사했다.

드레스덴에서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와 이 문제를 논의한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결의안 초안이 부족하지만 안보리 결의 하에서는 파병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슈뢰더 총리는 "이라크사태에 군사적으로 관여할 생각은 없다"며 단호한 입장을 확인했다.

워싱턴.카이로=이효준.서정민 특파원, 채병건 기자

<이라크 결의안 요지>

▶(미군이 임명한) 이라크 과도통치위원회를 과도 행정부의 최고기구로 인정한다

▶다국적군 창설을 승인하며, 회원국에 군사 지원을 촉구한다

▶미국은 다국적군 참여국을 대신해 6개월 이내에 안보리에 보고한다

▶국제기구와 회원국에 이라크 재건을 위한 재정 지원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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