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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스타인 쫓아냈다” 블랙 벗고 화려한 옷으로 미투 지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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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와인스타인의 성폭력을 폭로했던 애슐리 저드, 아나벨라 시오라, 셀마 헤이엑. [AP=연합뉴스]

와인스타인의 성폭력을 폭로했던 애슐리 저드, 아나벨라 시오라, 셀마 헤이엑. [AP=연합뉴스]

“클로이 김이 올림픽 하프 파이프에서 1080도 회전을 하고 난 직후의 기분이 이런 거였구나 생각이 드네요.”

올해 키워드는 다양성 속 균형 #“드레스 코드 필요없다” 당당함 표출 #남녀주연상 시상자는 ‘여여’로 파격 #에마 스톤, 바지 차림으로 상 건네

4일(현지시간) 미국 LA 돌비극장에서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렸다. 여우주연상 수상자로 호명된 프랜시스 맥도먼드는 평창 겨울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재미교포 스노보드 스타를 언급하며 감격을 드러냈다. 곧이어 연기·촬영·감독·각본 등 각 분야에서 올해 후보에 오른 모든 여성에게 자리에서 일어나 달라고 요청했다. 함께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던 메릴 스트리프를 비롯, 색색의 드레스를 입은 여성들이 삽시간에 객석에서 일어서자 박수가 터졌다.

더 이상 블랙 드레스는 필요 없었다. 미투 운동 이후 처음 열린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은 지난 1월의 골든글로브 시상식처럼 검은색으로 옷차림을 통일하진 않았다. 무지개가 연상될 만큼 빨강·노랑·파랑·초록 등 다양한 색이 등장한 가운데 ‘미투’와 ‘타임스업’으로 불리는 성폭력 반대, 나아가 각종 차별 반대에 대한 지지와 공감의 분위기는 한결 뚜렷했다.

남우주연상을 시상한 제인 폰다와 헬렌 미렌. [AP=연합뉴스]

남우주연상을 시상한 제인 폰다와 헬렌 미렌. [AP=연합뉴스]

지난해에 이어 사회를 맡은 지미 키멜은 시상식 첫머리부터 “다들 알다시피 아카데미는 와인스타인을 축출했다”며 “너무 늦은 것이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 미국 언론을 통해 보도된 영화 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의 오랜 성추행·성폭력 전력은 ‘나도 당했다(Me, too)’는 줄이은 폭로와 함께 미투 운동이 전 세계에 퍼지는 계기가 됐다. 아카데미는 숱한 아카데미 수상작을 배출했던 거물 와인스타인을 회원에서 제명했다.

와인스타인에게 성폭력을 당한 사실을 폭로했던 여성 가운데 배우 세 사람도 직접 무대에 올랐다. 지난해 9월 뉴욕타임스와 실명 인터뷰를 갖고 폭로에 앞장섰던 배우 애슐리 저드는 “변화를 이끌어 낸 것은 새로운 목소리, 다양한 목소리, 뭉쳐서 마침내 ‘타임스업(Time’s up, 시대가 끝났다)’이라고 말하는 강력한 합창”이라며 “우리는 다음 90년이 평등·다양성·포용·교차성의 무한한 가능성에 힘을 실을 것이라고 확실히 기대한다”고 말했다. 세 배우에 이어 주최 측이 사전에 만든 영상에는 성별과 인종이 다양한 여러 감독·배우·시나리오 작가 등이 나와 할리우드의 다양성 확대를 주장했다.

여우주연상을 시상한 조디 포스터와 제니퍼 로런스. [AP=연합뉴스]

여우주연상을 시상한 조디 포스터와 제니퍼 로런스. [AP=연합뉴스]

이날 시상식은 성별·인종·연령 등 여러 면에서 새로운 균형을 찾으려는 움직임이 두드러졌다. 지난해 남우주연상을 받은 케이시 애플렉은 성폭력 사실이 불거진 탓에 관례와 달리 올해 시상자로 나오지 않았다. 대신 배우 제니퍼 로런스와 감독 겸 배우 조디 포스터가 함께 여우주연상을 시상했다. 또 남우주연상은 관록의 여성 배우 제인 폰다와 헬렌 미렌이 시상하는 등 ‘시상자=남녀커플’이란 통념을 여러 차례 벗어났다. 지난해 ‘라라랜드’로 여우주연상을 받은 에마 스톤은 드레스 대신 바지 정장 차림으로 단독으로 나와 감독상을 시상했다.

여우주연상을 받은 맥도먼드는 수상소감 마지막에 “오늘 밤 두 마디를 남기겠다”며 “인클루전 라이더(inclusion rider)”라고 말했다. 인클루전 라이더는 배우들이 출연계약을 할 때 출연진·제작진 구성에서 성별·인종의 다양성을 요구하는 항목을 넣는 것을 가리킨다.

지난해 여우주연상 수상자이자 올해 감독상 시상자 에마 스톤. [AP=연합뉴스]

지난해 여우주연상 수상자이자 올해 감독상 시상자 에마 스톤. [AP=연합뉴스]

배우들의 옷차림이 굳이 검은색 일색이 아니었던 것은 자신감의 반영으로 풀이된다. 영화계 여성 300여 명으로 이뤄진 단체 ‘타임스업’은 지난 1일 기자회견을 통해 “드레스 코드는 더 이상 필요없다. (아카데미 시상식은) 우리의 운동이 지난 6개월 동안 얼마나 성장했는지 축하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간호섭 홍익대 섬유미술·패션디자인과 교수는 “이번 아카데미 레드카펫은 확실히 잔칫집 분위기가 물씬 났다”며 “적극적이고 당당하게 컬러로 다양성을 극대화(Maxium Variety)하려는 메시지가 잘 드러났다”고 말했다. 또 “드레스를 벗고 슈트를 입은 여배우들의 등장은 스타일을 포함해 인종·성별 등 다양성을 인정하고 화합하기를 바라는 강력한 메시지 중 하나”라고 말했다. 제인 폰다가 흰색 드레스에 ‘타임스업’ 배지를 달고, 뮤지컬 배우 린마누엘 미란다가 최근의 총격 참사를 추모하고 총기 규제를 촉구하는 오렌지색 핀을 단 모습도 눈에 띄었다.

이후남·윤경희 기자 hoo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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