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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주연상 받고 "클로이 김이 올림픽에서 느꼈던 기분"

중앙일보

입력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을 받은 샘 록웰, 여우주연상을 받은 프랜시스 맥도먼드, 여우조연상을 받은 앨리슨 제니, 남우주연상을 받은 게리 올드만. [AP=연합뉴스]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을 받은 샘 록웰, 여우주연상을 받은 프랜시스 맥도먼드, 여우조연상을 받은 앨리슨 제니, 남우주연상을 받은 게리 올드만. [AP=연합뉴스]

 "클로이 김이 올림픽 하프 파이프에서 1080도 회전을 하고 난 직후의 기분이 이런 거겠구나 생각이 드네요."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 수상자로 호명된 프란시스 맥도먼드는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재미교포 스노보드 스타를 언급하며 수상의 감격을 드러냈다.
 맥도먼드는 곧이어 연기·촬영·감독·각본 등 각 분야에서 올해 후보에 오른 모든 여성에게 자리에서 일어나 달라고 요청했다. 함께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던 메릴 스트리프를 비롯, 색색의 드레스를 입은 여성들이 삽시간에 객석에서 일어서자 박수가 터졌다.

'쓰리 빌보드'의 프란시스 맥도먼드 # 20여년 전 '파고' 이어 두 번째 수상 # 각 부문 여성 후보들 일으켜 세우며 # 연대감 드러내는 극적인 순간 만들어

여우주연상을 받은 프랜시스 맥도먼드의 요청으로 함께 후보에 올랐던 메릴 스트리프를 시작으로 올해 각 부문 후보에 오른 여성들이 객석에서 일어나 박수를 받았다. [AFP=연합뉴스]

여우주연상을 받은 프랜시스 맥도먼드의 요청으로 함께 후보에 올랐던 메릴 스트리프를 시작으로 올해 각 부문 후보에 오른 여성들이 객석에서 일어나 박수를 받았다. [AFP=연합뉴스]

 더 이상 블랙 드레스는 필요 없었다. 미투 운동 이후 처음 열린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은 지난 1월의 골든글로브 시상식처럼 검은색으로 옷차림을 통일하진 않았다. 미국 LA 돌비극장에서 5일(현지시간 4일) 열린 시상식과 레드카펫에는 무지개가 연상될 만큼 빨강·노랑·파랑·초록 등 다양한 색이 등장했다. 이런 가운데 '미투'와 '타임스업'으로 불리는 성폭력 반대, 나아가 각종 차별 반대에 대한 지지와 공감의 분위기는 한결 뚜렷했다.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 사회를 맡은 지미 키멜. [AP=연합뉴스]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 사회를 맡은 지미 키멜. [AP=연합뉴스]

 지난해에 이어 사회를 맡은 지미 키멜은 시상식 첫머리부터 "다들 알다시피 아카데미는 와인스타인을 축출했다"며 하지만 "너무 늦었던 일"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9월 미국 언론을 통해 보도되기 시작한 영화 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의 오랜 성추행·성폭력 전력은 '나도 당했다(Me, too)'는 줄이은 폭로와 함께 미투 운동이 전 세계에 퍼지는 계기가 됐다. 숱한 아카데미 수상작을 배출했던 거물 제작자 와인스타인은 아카데미 회원에서 전격 제명됐다.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 무대에 오른 애슐리 저드, 아나벨라 시오라, 셀마 헤이엑. [AP=연합뉴스]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 무대에 오른 애슐리 저드, 아나벨라 시오라, 셀마 헤이엑. [AP=연합뉴스]

 와인스타인에게 성폭력을 당한 사실을 폭로했던 여성 가운데 배우 세 사람도 직접 무대에 올랐다. 지난해 9월 뉴욕타임스와 실명 인터뷰를 갖고 폭로에 앞장섰던 배우 애슐리 저드는 "변화를 이끌어 낸 것은 새로운 목소리, 다양한 목소리, 뭉쳐서 마침내 '타임스업(Time's up, 시대가 끝났다)'이라고 말하는 강력한 합창"이라며 "다음 90년이 평등·다양성·포용·교차성의 무한한 가능성에 힘을 실을 것이라고 확실히 기대한다"고 말했다. 세 배우에 이어 주최 측이 사전에 만든 영상에는 성별과 인종이 다양한 여러 감독·배우·시나리오작가 등이 나와 할리우드의 다양성 확대를 주장했다.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남우주연상 시상자로 나온 제인 폰다와 헬렌 미렌. [AP=연합뉴스]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남우주연상 시상자로 나온 제인 폰다와 헬렌 미렌. [AP=연합뉴스]

 이날 시상식은 성별·인종·연령 등 여러 면에서 새로운 균형을 찾으려는 움직임이 두드러졌다. 지난해 남우주연상을 받은 케이시 애플렉은 성추행이 불거진 탓에 관례와 달리 올해 시상자로 나오지 않았다. 대신 배우 제니퍼 로런스와 감독 겸 배우 조디 포스터가 함께 여우주연상을 시상했다. 또 남우주연상은 관록의 여성 배우 제인 폰다와 헬렌 미렌이 시상하는 등 '시상자=남녀커플'이란 통념을 여러 차례 벗어났다. 지난해 '라라랜드'로 여우주연상을 받았던 엠마 왓슨은 바지 정장 차림으로 나와 단독으로 감독상을 시상했다.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여우주연상 시상자로 나온 조디 포스터와 제니퍼 로런스. [AP=연합뉴스]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여우주연상 시상자로 나온 조디 포스터와 제니퍼 로런스. [AP=연합뉴스]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장편다큐멘터리상 시상자로 나온 그레타 거윅과 로라 던. [AP=연합뉴스]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장편다큐멘터리상 시상자로 나온 그레타 거윅과 로라 던. [AP=연합뉴스]

 여우주연상을 받은 맥도먼드는 수상소감 마지막에 "여러분에게 오늘 밤 두 단어를 남기겠다"며 "인클루전 라이더(inclusion rider)"라고 말했다. 인클루전 라이더는 배우들이 출연계약을 할 때 출연진·제작진 구성에서 성별·인종 등의 다양성을 요구하는 항목을 넣는 것을 가리키는 말로 알려졌다.
 맥도먼드의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은 이번이 두 번째다. 21년 전 코엔 형제가 감독한 범죄 영화 '파고'로 첫 번째 아카데미상을 받았다. 이번 수상작 '쓰리 빌보드'에서는 잔혹한 범죄에 딸을 잃고 경찰의 무능한 수사를 비판하는 대형 입간판을 세우는 엄마를 연기했다. 국내 극장가에는 3월 15일 개봉한다.

프란시스 맥도먼드에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긴 영화 '쓰리 빌보드'. [사진 이십세기폭스코리아]

프란시스 맥도먼드에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긴 영화 '쓰리 빌보드'. [사진 이십세기폭스코리아]

 한편 클로이 김은 아카데미 시상식 직후 트위터에 놀라움을 표현하는 글에 이어 프란시스 맥도먼드를 향해 언젠가 함께 스노보드를 타러 가자는 글(Hey Frances let's go snowboarding sometime)을 올렸다.

 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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