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서도 첫 '미투'···“의원 보좌관이 3년간 성추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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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보좌진 중에서도 첫 ‘미투(#MeTooㆍ나도 당했다)’가 나왔다.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서 비서관으로 근무하는 A씨는 5일 국회 홈페이지 ‘소통마당’에 자신의 실명을 밝히고 “2012년부터 3년여 간 근무했던 의원실에서 벌어진 성폭력으로 인해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적었다. 가해자를 “4급 보좌관인 그 사람”으로 칭한 A씨는 “(국회 의원)회관에서 함께 일하기 전부터 아는 사이였다”며 “직장 상사관계로 묶이기 시작한 뒤 장난처럼 시작된 성폭력이 일상적으로 반복됐다”고 했다. 두 사람은 19대 국회 때 민주당 의원실에서 함께 근무했다.

상습적인 신체접촉과 음담패설 등 피해 내용을 구체적으로 적시한 A씨는 “지금 문화예술계 전반에서 폭로되고 있는 성폭력의 강도에 비춰보면 별 일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면서도 “그러나 직장 내 성폭력은 폭력의 정도에 따라 경중을 따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일상화된 폭력은 제가 해당 의원실을 그만둘 때까지 3년 간 지속됐다”며 “아무도 없을 때 둘 사이에서 벌어졌던 일이기 때문에 증거를 모을 수도, 누구에게 말을 할 수도 없었다”고 했다.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의 모습 [중앙포토]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의 모습 [중앙포토]

가해자에게 항의한 뒤 오히려 직장 생활이 어려워진 경험에 대해서도 밝혔다. A씨는 “당사자에게 항의도 해보고, 화도 내봤지만 소용 없었다”고 적었다. 이어 “‘가족만큼 아낀다’, ‘동생 같아서 그랬다’라며 악의 없는 행위였다는 말도 안되는 변명만 늘어놨다”고 했다. 특히 “항의를 거듭할수록 오히려 의원실 내에서의 저의 입지는 좁아졌다”며 “직장 내 ‘위계에 의한 성폭력’은 ‘직장 내 괴롭힘’을 동반한다. 항의를 심하게 할수록 권력과 정보를 독점하고 있는 직위를 이용해 그 상황을 교묘하게 이용하더라. 본인은 세상에서 제일 착한 상사인 척하며 사람 한 명 바보 만드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닐테니까”라고 했다.

자신을 “생계형 보좌진”이라고 밝힌 A씨는 “먹고 살아야 했기 때문에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는 경력이 쌓일 때까지 사직서를 낼 수 없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그냥 견디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날이 갈수록 불면증과 우울증은 심해졌고, 원형탈모까지 생겼다. 가해자와 분리되면 고통이 사라질 것이라 생각하며 버텼다”고 지난 날을 회상했다. 그러고는 “그러나 지금도 술을 마시거나 약을 먹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다. 비슷한 사건이나 기사를 보는 날이면 같은 상황이 반복되는 악몽을 꾼다”며 “그간 참 오랜 시간 스스로를 자책했다. 머릿속에서 몇 번이나 지웠던 그 사람이 회관 엘리베이터에서, 회의장에서, 복도에서 되살아나 저를 또 다시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고 했다.

A씨는 “부탁드린다. 피해자의 자기 고백은 치유의 시작이기도 하다”면서 “숨죽이고 살아가고 있는 많은 피해자들이 스스로의 치유를 위해 함께 나설 수 있도록 도와달라. 저의 동료들이 ‘네가 어떤 선택을 하든 난 네 편이야’라고 용기를 줬던 것처럼 말이다”라고 끝맺었다.

가해자로 지목된 해당 보좌관은 현재 다른 당의 의원실에서 근무 중이다. 해당 의원실 측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사실관계를 파악해 보고 필요하다면 적절한 조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허진·김경희 기자 b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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