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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마음껏 만지고 실패하는 과학관…"망가뜨려도 괜찮아"

중앙일보

입력

서울시립과학관 이정모 관장은 "실패를 경험하는 것이 과학"이라며 "우리 과학관에 와서 실제로 만져보고 실패도 많이 해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시립과학관 이정모 관장은 "실패를 경험하는 것이 과학"이라며 "우리 과학관에 와서 실제로 만져보고 실패도 많이 해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만지지 마시오’ ‘뛰지 마시오’ ‘떠들지 마시오’라는 팻말이 없는 전시관. 마음껏 실패하는 실험실. 답을 얻는 게 아니라 새로운 질문을 얻는 곳. 지난해 5월 서울 노원구에 문을 연 서울시립과학관의 이야기입니다. 눈으로 구경하는 곳이 아닌, 손으로 배우고 몸으로 익히는 과학관으로 만들고 싶다는 이정모 관장이 지난 2월 24일 도슨트로 나서서 서울의 첫 시립과학관을 소개했어요. 그 현장에 소중 학생기자가 다녀왔습니다.

"과학은 손으로 하는 것이에요. 만지지 않으면 소용이 없죠. 그래서 우리 과학관에는 '만지지 마시오'라는 팻말이 없어요. 마음껏 만져도 되고 망가뜨려도 괜찮습니다. 물론, 일부러 망가뜨리는 건 곤란하지만요(웃음)."

서울시립과학관 이정모 관장이 지난 2월24일 직접 도슨트를 맡아 과학관을 소개했다.

서울시립과학관 이정모 관장이 지난 2월24일 직접 도슨트를 맡아 과학관을 소개했다.

서울시립과학관 1/2층에 있는 사이언스홀. 이날 도슨트를 맡은 이정모 관장이 학생·학부모 앞에 마이크를 잡고 섰습니다. "우리 과학관은 사실 어린이를 위한 곳은 아니에요. 청소년과 성인의 눈높이에 맞췄죠. 어린이들에게는 조금 어려운 게 사실이에요. 하지만 너무 쉬우면 재미가 없잖아요. 함께 온 부모님들이 도와줄 것도 없고 말이에요. 한 번 와서 전부 이해가 되는 것보다는 온 가족이 재밌게 즐기고 또 오고 싶은 곳이 되었으면 해요."

소중 학생기자를 비롯한 관람객들은 마이크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이어폰을 하나씩 끼고 2층 B(Blue) 전시실부터 이 관장의 인솔로 둘러보기 시작했어요. ‘연결’을 주제로 한 전시물 중 첫 번째로 '교통카드에는 어떻게 정보가 담기고 전달될까?'를 살펴봤죠. 관람객이 자신의 교통카드를 단말기에 대면 내가 몇 시에 어디에서 어디로 갔는지 전부 모니터에 떠요. 이렇게 많은 정보가 교통카드에 어떻게 담기고 단말기에 전달되는지 글과 그림으로 원리가 설명돼 있죠. 그런데 이 관장의 설명을 들은 학생 한 명이 자신의 교통카드를 대봤지만 어찌된 일인지 기계에서는 반응이 없네요. 매주 수리하지만 전시물의 3~5%는 망가져 있다는 설명이 사실이었어요. 마음껏 만지고 놀 수 있는 서울시립과학관의 특성 때문이에요. 다음에 올 땐 말끔하게 고쳐져 있겠죠.

서울시립과학관에는 특수 안경을 쓰고 가상의 우주공간을 여행해볼 수 있는 3D스페이스가 있다. 미리 녹화된 동영상을 트는 것이 아니라 해설자가 조작하는대로 탐험할 수 있다.

서울시립과학관에는 특수 안경을 쓰고 가상의 우주공간을 여행해볼 수 있는 3D스페이스가 있다. 미리 녹화된 동영상을 트는 것이 아니라 해설자가 조작하는대로 탐험할 수 있다.

전시실을 더 둘러볼까요. 자동차의 속도를 측정하는 스피드건, 별을 관측할 수 있는 망원경, 킬로그램(kg)·암페어(A)·켈빈(K)·칸델라(cd)와 같은 과학의 기본단위를 체험할 수 있는 시설 등이 마련돼 있어요. 지하철 노선을 평면이 아닌, 각 노선별로 지나는 땅 밑 깊이의 차이를 보여주는 입체 지도도 눈길을 끕니다. 늘 보던 세계지도와 지구본이 나란히 전시된 공간도 있었죠. 차이점이라면 줄자가 매달려 있는 거예요. 이 관장이 평면 지도에 있는 줄자로 서울-런던 간 거리를 재봤어요. 47㎝가 나오네요. 다시 지구본에서 서울-런던의 거리를 재봤는데요. 이럴 수가, 28㎝네요. 평면과 입체가 얼마나 다른지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이었죠.

특별 도슨트로 나선 이정모 관장.

특별 도슨트로 나선 이정모 관장.

옆으로 자리를 옮기니 두 남학생이 말도 없이 테이블 가운데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습니다. 뭘 하는 걸까요. 바로 '뇌파 체험' 중이랍니다. 인기가 높아 예약을 해야 이용할 수 있을 정도인데요. 머리에 특수한 장치를 쓰고 테이블에 놓인 쇠구슬을 쳐다보면서 뇌파를 집중시키면 두 사람 중 집중력이 더 약한 쪽으로 쇠구슬이 움직입니다. 오로지 집중력으로만 승부하는 게임이죠. 실시간으로 두 사람의 뇌파를 그래프로 나타내주는 모니터도 있답니다. 예약제로 운영되는 3D 스페이스는 특수 안경을 쓰고 입체 영상을 관람하는 곳이에요. 국내 최초인 L자형 스크린 상영관에서 우주를 실제로 돌아다니는 것 같은 경험을 할 수 있죠. 태양계와 우리은하를 벗어나 우주의 끝까지 멀어졌다가 토성의 고리 안으로 들어가보고 다시 지구로 돌아오는 우주여행을 해봤어요.

3층에는 ‘순환’을 주제로 한 R(Red) 전시실이 있습니다. 대형 쇠구슬처럼 생긴 구체와 쇠막대가 먼저 눈에 띄네요. 배터리의 원리를 체험하는 장치인데요. 4명의 지원자가 손을 맞잡고 선 뒤, 한쪽 끝에 있는 사람은 쇠막대를 잡습니다. 반대편에 있는 구체를 정전기 발생 장치로 충전해준 뒤 이쪽 끝에 있는 사람이 구체에 손을 갖다대자, 4명 모두 "으앗" 하며 손을 놓습니다. 찌릿한 전기를 느꼈기 때문이죠. 사람의 몸은 전기가 통하는 물질이어서 구체에 저장됐던 정전기가 네 사람의 몸을 관통해 쇠막대로 흐른 겁니다. 지원자로 나섰던 시준이는 "정말 찌릿했다"며 신기해했어요.

박시준(맨 오른쪽) 학생기자가 전기를 가둬두는 '라이덴 병' 원리를 이용한 정전기 체험에 나섰다.

박시준(맨 오른쪽) 학생기자가 전기를 가둬두는 '라이덴 병' 원리를 이용한 정전기 체험에 나섰다.

마찰력 실험 시설도 있었어요. 커다란 테이블에 2개의 통로가 만들어져 있는데, 한쪽에만 바람이 나와요. 약한 바람이 바닥에서 올라와 마찰력을 줄여주는 거죠. 한쪽 끝에 원반을 놓고 같은 힘으로 충격을 가하니 바람이 나오는 쪽 원반이 더 멀리 나가는 걸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또 원반의 움직임을 즉석에서 고속촬영한 화면이 벽에 띄워지는데요. 마찰력이 큰 쪽은 감속 운동을 한다는 걸 한눈에 알 수 있어요. 동그란 원반이 넓은 간격으로 찍히다가 끝부분에서는 촘촘하게 찍혀 있거든요. 교과서 속 그림처럼 고정돼 있지 않고 실험할 때마다 매번 다른 그림이 나타납니다.

2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는 길에는 루트(√)2층이 있어요. ‘생존’에 대한 O(Orange) 전시실로 생명과학을 다룹니다. DNA 지문 분석기와 피부 확대 관찰 장치, 의대에서 실제로 활용하는 시체 해부 연습용 디지털 모니터 등이 있습니다. 빛의 성질에 대해 공부한 뒤 햇빛을 담은 팔찌를 만들어볼 수 있는 체험존도 인기죠.

다양한 톱니바퀴의 움직임을 통해 물리 운동의 원리를 살펴볼 수 있는 전시물에 대해 이정모 관장이 설명하고 있다.

다양한 톱니바퀴의 움직임을 통해 물리 운동의 원리를 살펴볼 수 있는 전시물에 대해 이정모 관장이 설명하고 있다.

1층 G(Green) 전시실에서는 ‘공존’과 관련된 전시물을 볼 수 있어요. 서울의 생태 환경과 도시구조 속 과학 원리를 체험하는 공간입니다. 모래가 담긴 커다란 테이블이 특히 눈길을 사로잡는데요. 모래의 높이에 따라 다른 색깔의 화면이 모래 위로 나타납니다. 모래를 높이 쌓으면 등고선처럼 색이 변하고 깊이 파서 높이가 낮아지면 강물이 그려지기도 해요. 지형과 지질에 대한 설명도 볼 수 있답니다. 지진체험존도 있고요.

이밖에도 과학관에는 3D 프린터와 CNC 공작기계 등이 마련된 아이디어 제작소와 파이(∏)실이라는 실험실이 있어요. 이 관장은 "실제로 조작해보고 기술을 적용해보면서 실패를 경험하는 것이 과학"이라며 "학생들이 우리 과학관에 와서 많이 실패해보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모래의 높낮이에 따라 색이 달라지는 전시물에서 학생들이 직접 모래를 쌓았다가 허물어보기도 했다.

모래의 높낮이에 따라 색이 달라지는 전시물에서 학생들이 직접 모래를 쌓았다가 허물어보기도 했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오기를 바라지 않아요. 너무 많이 오면 제대로 관람하기 어렵기 때문이죠. 적당한 인원이 반복해서 찾아와주기를 원합니다. 오늘 대충 둘러봤는데도 2시간 가까이 걸렸어요. 올 때마다 1~2개 전시물을 충분히 체험하고 돌아가는 게 좋아요. 어린이들은 놀러온다는 기분으로 즐기다가 나중에는 실험실에서 직접 실험도 해보세요. 과학고에 가지 않아도 과학실험을 할 수 있는 곳이에요. 우리 과학관이 1년에 한 번 찾아가는 곳이 아닌, 늘 가까이에 있는 곳이 되었으면 합니다."

글=최은혜 기자 choi.eunhye1@joongang.co.kr, 동행취재=박시준(경기도 태장초 5)·유주원(경기도 광성드림학교 6)·임가윤(대구 동일초 6) 학생기자, 사진=임익순(오픈스튜디오)

서울시립과학관
-관람 시간 : 동절기(11월~다음해 2월) 평일 오전 9시~오후 5시 토요일·공휴일 오전 9시~오후 6시 / 하절기(3~10월) 평일 오전 9시~오후 5시 토요일·공휴일 9시~오후 7시 (종료 1시간 전 매표 마감)
-휴관일 : 매주 월요일, 1월 1일, 추석 당일
-관람요금 : 어린이·청소년(8~19세) 1000원, 성인(20~65세) 2000원, 장애인·유아·고령자·국가유공자 무료

-주소: 서울시 노원구 한글비석로 160

이정모 관장
‘생화(꽃)’를 연구하는 줄 알고 간 연세대 생화학과에서 전공과목이 재밌어서 과학자를 꿈꾸게 됐다.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독일 본 대학교 화학과에서 곤충과 식물의 커뮤니케이션 연구로 박사과정을 마쳤다. 안양대 교양학부 교수로 과학사, 과학기술과 문명 등을 강의했고, 2011년 9월부터는 서대문자연사박물관 관장으로 일했다. 지금은 2017년 5월에 개관한 서울시립과학관 관장이다. 『공생 멸종 진화』, 『바이블 사이언스』, 『과학하고 앉아있네 1』(공저), 『해리포터 사이언스』(공저) 외 다수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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