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진 관장은 "백제의 금동관.금동신발.구리거울 등 다양한 유물이 세트를 이뤄 발견되기는 1971년 발굴된 무령왕릉 이후 처음이다"며 "백제 중앙정부와 구분되는 독자적 정치세력이 5세기 이후에도 한반도 남부에 존재했다는 사실을 일러준다"고 말했다.
금동관.금동신발 등은 특정 권력집단이 자신의 신분이나 지위를 과시하기위해 사용하는 대표적 위세품(威勢品)이다. 백제가 서울에 도읍한 한성백제(기원전 18년~서기 475년)시기, 중앙과 지방의 관계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참고자료가 된다. 고흥 일대는 고대 백제의 기틀을 닦은 근초고왕(?~375) 때 백제에 병합됐다. 이번에 나온 유세품은 근초고왕 이후에도 고흥 지역 권세가들이 왕관을 사용할 만큼 강력한 체제를 유지했다는 점을 시사한다.
백제 금동관이 발견되기는 5번째다. 전남 나주군 신촌리, 전북 익산시 입점리, 충남 서산군 부장리 등에서 출토됐다. 임 관장은 "이번 금동관은 투조(透彫.재료의 앞면에서 뒷면까지 도려내어 모양을 내는 조각법) 문양이 5세기에 만들어진 서산 부장리 것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전남대박물관은 25일 발굴현장에서 설명회를 열고, 훼손이 심한 출토 유물은 바로 보존처리할 계획이다.
박정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