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MC의 힘… "代打는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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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행 보증수표’라 일컬어지는 스타는 영화판에만 있는 게 아니다. TV 오락 프로그램의 경우에도 ‘아무개가 MC를 맡기만 하면 성공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얘기를 듣는 연예인들이 있다. 이른바 ‘스타 MC’다.

이들 스타 MC는 방송사며 담당 PD를 입맛에 따라 고르거나 프로에 자기 이름을 거는 등 힘을 발휘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래서 상당수 오락 프로들은 본격 기획에 앞서 일단 잘 나가는 MC를 붙잡는 일에 목을 맨다.

프로의 내용이나 구성도 MC 개인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 그러다보니 MC가 중도하차할 경우 프로 자체가 존폐 위기에 놓일 만큼 스타 MC들의 영향력은 갈수록 막강해지고 있다.

최근 신동엽.강호동이 출연 중인 프로들에 MC 사퇴 의사를 밝히면서 방송가에 미친 파장은 스타 MC들의 힘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강호동의 경우 MBC와의 재계약 협상이 결렬되면서 지난 1년간 진행해온 '강호동의 천생연분' MC직을 이달말 떠나기로 했다. '…천생연분'은 남녀 연예인들이 게임을 통해 커플을 맺는 과정을 코믹하게 보여주는 주말 저녁의 인기 프로.

매회 출연하는 연예인들의 '끼'도 만만치 않지만 우렁찬 목소리와 날렵한(?) 몸놀림으로 무대를 휩쓰는 MC 강호동의 활약상이야말로 최고의 수훈 감이다.

이에따라 그의 사퇴 소식이 알려지면서 이 프로의 홈페이지엔 "호동 오빠 그만두지 마세요" "다시 생각해보라"는 팬들의 성화가 빗발치고 있다. 일부 팬들은 "후속 MC엔 누가 좋겠다"는 의견을 조심스레 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고심하던 MBC 측은 '…천생연분'을 접고 다음달부터는 새 프로를 내보내는 쪽으로 결심을 굳혔다. 최영근 책임프로듀서는 "강호동의 이미지가 워낙 강하게 배어있는 프로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건 구차스럽다고 판단해 아예 프로를 폐지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대안으로 MBC는 오는 8일 방송되는 파일럿(시험용) 프로그램 '본격 질풍노도 생(生) 쇼'를 고정 편성하는 방침을 검토 중이다.

'…생쇼'는 하하.MC몽.팀.강두.세븐 등 다섯명이 공동 진행하는 자유분방한 토크쇼. 최 책임프로듀서는 "스타급 MC 한명에게만 의존하는 관행에서 탈피해 가능성 있는 신인을 발굴하려는 시도로 봐달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PD들이 현역 MC 중 최고로 꼽는 신동엽 역시 방송사들의 가을 개편에 맞춰 현재 맡고 있는 프로의 대부분을 그만두겠다는 의사를 전달해 방송사마다 대응에 분주한 형편이다.

우선 신동엽이 '신동엽.김원희의 헤이헤이헤이''신동엽.남희석의 맨Ⅱ맨'등을 맡고 있는 SBS의 경우 개편에서 이들 프로를 모두 폐지하기로 하고 새 프로를 준비 중이다.

'…헤이헤이헤이'의 남승용 PD는 "프로에서 신동엽의 비중이 워낙 크기 때문에 MC를 교체해 계속 간다는 건 생각하기 힘들다"면서 "아쉽긴 하지만 애당초 신동엽이 딱 1년간만 MC를 맡겠다고 했기 때문에 방송사 입장에선 약속을 지킬 수밖에 없다"고 했다.

반면 KBS '해피투게더'의 제작진은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표정이다. "늘 그만둔다, 그만둔다 하면서도 계속해왔는데 협상의 여지가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이같이 '스타 MC들이 재채기하면 방송사가 독감에 걸리는' 형국에 대해선 다양한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개인 사정 때문에 인기 프로를 막 내리게 하는 데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이 있는가 하면 "드라마처럼 오락 프로의 MC도 인기 절정일 때 그만둬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게 해주면 안 되나"라는 지지론도 나온다.

한 방송계 관계자는 "기본적으론 MC 개인에게 너무 의존하는 방송사의 오락 프로 제작 관행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면서 "탄탄한 구성과 아이디어로 승부하려는 자세가 아쉽다"고 꼬집었다.

신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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