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한족 기개서린 남경…명대숨결 생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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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9월16일 새벽6시, 3일간의 소주여행을 마치고 남경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50년이나 가슴에 쌓였던 「수저우」(소주)에 대한 숙제를 풀고나니 달리는 차창 밖에 전개되는 남중국의 풍광은 더욱 아름다와 보였다. 비단의 명산지답게 뽕나무 밭이 계속된다. 역시 검은 기와 지붕에 흰색담의 농가들, 남중국 특유의 농촌풍경이다.
열차는 명승의 관광지 「우시」(무석)와 「쩐쟝」(진강)을 통과하여 소주를 떠난지 4시간좀지나 오전10시15분 남중국의 대표적 고도「난징」(남경)역에 닿았다.

<가로는 수목터널>
수많은 여객 틈바구니에 끼여 역밖으로 나가니 투숙객을 유치하려는 여관종업원들의 소리가 요란하다. 남경역은 크지는 않으나 백색의 아담한 건물로, 앞광장에는 소철·종려등 남방의 상록수가 이국풍의 인상을 준다. 날씨는 몹시 덥다. 고생 끝에 택시 한대를 구해 타고 「난징 판덴」(남경반점·남경호텔)으로 직행했다.
남경호텔은 비록 구형이나 공원같이 잘 정돈된 정원에다 시설이 좋은 건물이다. 우리는 여장을 물고 점심을 먹으러 호텔식당으로 들어갔다. 넓은 식당 홀안에는 많은 관광객들, 특히 미국·일본·소련·인도등 외국인도 많이 보였다. 상백하홍의 제복을 입은 날씬하고 예쁜 웨이트리스들은 친절히 서비스한다. 중국의 표준어도, 영어도 곧잘 한다. 처음 먹는 고급의 남경 요리는 맛도 좋은데 그중 남중국의 특산인 죽순 요리는 이채로왔다. 오후에는 호텔차로 명승관광에 나섰다.
첫 관광지는 중공정부가 자랑하는 「창챵 따챠오」(장강대교 즉 양자강대교). 차창 밖도로에는 가로수가 무성한데 각종 회사·은행·상점등이 즐비하고 청춘남녀들의 자전거 행렬은 여전하다.
약 30분만에 우리는 장강대교에 도착했다. 우리 앞에는 세계 제4의 대양자강이 나타났다. 튼튼히 세워놓은 2층의 대철교위를 올라갔다. 운전사 「라오 천」(노진 즉 진)군의 말에 의하면 1970년에 낙성된 이 철교는 총 길이가 6천7백여m로 1층은 기차가 달리고 지금 우리가 건너고 있는 2층에는 중앙에 차도, 양편에 인도가 있어 내왕이 빈번하다고 한다. 저 강 건너편 북쪽기슭은 희미한 안개 속에 산과 숲속에 누각들이 보일듯 말듯한데, 다리밑에는 황색의 강물이 도도히 흘러간다. 생각나는 고시 한구, 『강남사만팔천사 다소누대연우중』(강남 넓은 땅의 수많은 절과 누각들, 얼마나 안개 빗속에 숨어 있는가!). 운전사 진군은 우리에게 중국의 명가수 「장진 슈」(장금수)양의 아름다운 노래를 들려준다.
9월18일, 남경의 제3일 (제2일은 전에 소개한 양주여행). 호텔에서 알선한 「쟝수성 중궈뤼싱서」(강소성중국여행사)의「남경일일유람」에 나섰다. 경비는 1인당 25원 (한화 약7전5백원). 관광버스에는 미·일·중(광동)인과 우리 한국인등 40여명이 탔다. 시내로 들어서니 울창한 가로수는 하늘을 찌를듯 높이 솟아 있고, 가는데마다 수목의 터널을 이루어 장관이다. 내 옆에서 안내하는 청년은 왼쪽에 나타난 대형의 석조문을 가리키고 여기는 국민당 시대의 총통부라 하면서 장개석은 대륙의 보물을 대만으로 많이 옮겨갔다고 한다.

<미령궁 새로 단정>
좀 있다 오른쪽으로 울창한수목 안의 회색건물을 보라면서, 여기는 「메이링 궁」(미령궁) 즉 장총통의 부인 송미령이 살던 궁전이라고 한다. 조용히 숲속에 있는 총통부와 미령궁은 지나간 역사와 그 영화를 말해주는듯 했다. 새로 단청을 한 서궁과 동궁을 보고 중산문을 지나 또 울창한 수목의 터널을 이리 돌고 저리돌아 유명한 「중산링」(중산능)에 도착했다. 입구 광장은 차와 관광객, 그리고 상인들로 붐볐다. 부근에서 스케치하는 어느 중학생들과 같이 나도 잠시 크로키(연사)했다.
능도입구 정면에는 3개패누의 석문이 우뚝 솟아있고 여기서3백92단의 석계를 올라가면 7백m 고지에는 백색의 대리석에 금색도 고상하게『중국국민당 장총이손선생어차, 중화민국십팔연육월일일』(십팔년은 1927)이라고 3행으로 새긴 비석이서 있어 근대 중국의 위대한 지도자 손중산(문)선생의 유덕을 추모케 한다.
이 높은 자금산기슭 중산능렴소앞에 서서 수해로 덮인 남경전시가를 내려다 보았다. 동진이래 2천6백여년의 역사를 가진 남조의 대표적 고도「진링」(금능) 즉 남경은 말없이 지나간 영고성쇠의 역사를 알리는듯 했다.
고탑이 멀리 보이는 「링구슨(영고사) 를 지나 유명한 「밍쇼링」(명효능)에 이르렀다.
이 명효능은 몽고족의 원제국을 정복하고 다시 한족의 왕통을 계승한 명대조(주원장)의 능이다.

<명대조 위풍 자랑>
입구에는 낙타·코끼리·말등의 생동감있는 석조상이 능도양편에 줄지어 정복자 명태조의 위풍을 알리는듯 했다. 그의 능묘를 보고 연보라색 들국화들이 소담하게 피어 있는 언덕길을 내려와 차에 올랐다. 「중산베이루」(중산배로)의 「융메이자이」(영매재)와 「난징위치창」(남경옥기창)에 들러 향기로운 차를 마시면서 중국공예미술의 묘기에 도취했다.
다음 점심시간이 되어 「띵산판덴」(정산반점·정산 호텔)식당으로 안내되었다. 역시 남중국은 어디를 가나 죽순요리가 일품이다. 점심을 마친 일행은 양자강대교로 왔다. 안내청년은 특히 야경이 아름답다고 한다 (이 대교 소개는 먼저했으므로 이만큼 하고…).
대교 관광을 마치고 남경시 제1의 휴식처 「셴우후」(현무호)에 도착했다. 초가을의 미퐁에 나부끼는 호반의 버들가지 밑에는 강태공들이 낚싯대를 드리우고 백색의 오리형 배에는 청춘남녀들이 사랑을 속삭이고 있다. 넓은 호수는 9월의 양광에 번쩍이는데 저멀리 호수 건너 숲사이의 백색 건물들이 호면에 반사되어 어른거린다. 스케치를 마치고 안사람과 벤치에 다정하게 앉아서 오늘의 이야기를 해본다. 그리고 녹음기에다 입을 대고 『여기는 남경의 유명한 호수 셴우후』라고 남중국 여행을 무사히 마친 기쁨을 신에게 감사했다.
남중국의 마지막 코스인 남경시의 인상, 그것은 수천년의 고도답게 배경처럼 웅장하지도 않고, 상해처럼 번잡하지도 않은 조용하고 고상한 도시였다. 남경을 떠나던 날 남경역 「허우처스」(후거실 즉 대합실) 에서 잠시 『배경주간』지의 「금일적화제」란 제목으로 안치국이란 작가(?)가 쓴 『문혁의 재연은 불허한다』라는 글을 읽으면서 「정중지와」(우물안 개구리) 같은 나의 천박한 정치에 대한 지식을 다시 한번째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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