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로 보는' 시각장애인 안경 개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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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귀로 보는 선글라스.

'귀로 본다'는 말이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실제 소리를 통해 뇌 속에서 영상을 만들어주는 장치가 개발됐다. 번거롭게 수술할 필요도 없어 시각장애인들에게는 엄청난 희소식이다.

'vOICe(사진)'로 불리는 이 장치의 개발자는 네덜란드 과학자인 피터 메이예르. 선글라스처럼 생긴 vOICe는 양쪽 렌즈에 각각 조그만 카메라를 달았다. 이 카메라는 눈앞의 영상정보를 스테레오로 받아들인 다음 선글라스 중앙에 감춰진 극소형 컴퓨터로 보내진다. 컴퓨터가 하는 일은 영상정보를 소리 정보로 바꿔주는 역할이다. 환한 물체가 있으면 볼륨을 키우는 식이다. 위아래로 움직이는 물체가 있으면 컴퓨터가 설명해 준다. 컴퓨터에서 나온 소리는 양쪽 귀에 꼽은 이어폰으로 흘러들어간다. 각각의 영상정보는 1초 간격으로 바뀐다.

이 장치를 선천적으로 시력을 잃은 사람과 사고로 시력을 잃은 사람에게 실험한 결과 양쪽 모두에서 대뇌에 희미한 영상이 맺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뉴욕에서 열린 인지뇌과학회에서도 하버드대 의대 연구진이 "시각장애인이 아닌 사람들이 뭔가를 보고 있을 때의 대뇌 움직임과 거의 같은 수준의 뇌 활동이 감지됐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성균관대 이정모(심리학) 교수는 "우리의 두뇌는 하나의 감각만 따로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시각과 청각.촉각 등 여러 가지 정보를 함께 처리하는 것이기에 귀로도 볼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시각 중추에 도달하는 신경 신호는 망막에 맺힌 이미지만의 신호가 아니라 여러 단계를 거쳐 변환된 신경신호라는 설명이다. 시각 자극의 조그만 차이들을 좀 더 다양한 소리로 변환할 수 있다면 그 소리를 통해 실제 이미지와 거의 같은 합성 이미지를 볼 수 있다는 예측도 가능해진다. 이 장치의 개발자는 최근 한 소프트웨어 회사와 손을 잡고, 카메라폰에 이 같은 시스템을 설치하는 데 성공했다. 시각장애인이 시각 정보가 반드시 필요한 상황에서 주머니 속 카메라폰을 꺼내 영상을 스캐닝한 뒤 이를 분석한 전화 음성으로 물체의 형상을 파악하는 방식이다.

심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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