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지방 행정 장악 따라 정치판도 변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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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올림픽이후 대체로 내년 초에 실시키로 예정돼 있는 지방자치제는 언뜻 아직 먼 얘기로 들리지만 실체론 우리 정치의 모습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을 가장 핵심적인 문제다.
지자제가 지방자치 단체장 직선까지 포함해 전면적으로 실시된다면 지방행정의 상당 부분이 야당의 손에 넘어가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난 총선 결과를 놓고 본다면 서울시장은 평민당, 서울시 의회는 야당이 장악하게될 것이고 부산시장은 민주당, 광주시장은 평민당, 대전시장은 공화당, 전남북 지사는 평민당, 충남지사는 공화당이 차지한다는 식의 결과가 될 것이다.
때문에 야당 측은 지자제 전면실시를 강력히 요구할 작정이고 중앙정부의 권한 약화를 꺼려 지방자치 단체장 직선을 반대해온 민정당 측도 뭔가 합당한 구실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야당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도리가 없다.
여야 모두 그들의 정치적 기반과 세력의 소장이 걸려있는 만큼 실시시기·범위를 둔 흥정에 벌써부터 신경을 쓰고 있다.
지난 총선에서 지역적 기반을 확인한 야당은 지자제에 큰 기대를 갖고 있다.
다음번 대권경쟁을 겨냥하고 있는 야당 측은 지자제를 통해 지방 행정기관을 장악하면 관권선거를 막을 수 있을 뿐 아니라 그동안 바람에만 의존했던 지지세력을 확실히 확대해 진짜 정당적 기반을 구축할 수 있는 호기라고 보고 있다.
민정당으로서는 지자제 선거에서조차 저조하게 되면 이는 사실상 정권의 상당부분을 내놓는 결과가 된다고 보고 있으며 지방의회 선거가 올림픽 후 재신임 투표의 성격을 띨 수도 있기 때문에 벌써부터 총선에서 흐트러진 지구당 조직을 정비하는 등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지자제실시 시기는 아무래도 내년 3, 4월께가 될 것 같다.
지난2월 12대 마지막 국회에서 민정당이 단독 통과시킨 지방자치법은「내년5월 이전 실시」로 규정했고 야당 측도 대충 그렇게 잡고 있다.
여당 측은 일단 12대 국회에서 확정해 놓은 지자제 관련법대로 실시해 보자는 얘기를 꺼내겠지만 물론 이것이 수용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다만 실시범위에서는 약간의 신축성이 있을것 같다.
지난 임시국회에서 통과된 개정 법률은 시군구에 먼저 지방의회를 구성한 뒤 2년 이내에 특별시·직할시·도에 지방의회를 구성토록 하고 있다.
이에 반해 평민·민주·공화 야권3당은 이를 보다 세분화해 시도 및 시군구는 물론이고 읍면동 단위에까지 전면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만 평민당의 김대중 총재는『정부가 단계적으로 실시해야할 이유를 충분히 납득시킨다면 시차를 두고 실시할 수도 있다』고 밝힌바 있고, 민주당의 김영삼 총재 역시『정치상황에 따라 단계실시를 고려할 수 있다』고 밝혀 실시범위에 있어서는 읍면동을 포함한 전면실시를 주장하되 실시방식에 있어선 단계실시도 수용할 뜻을 비추고 있다.
그러나 평민·민주당 모두 단계실시를 수용한다해도 우선 실시 지역은 현행 법률이 규정하고있는 시군구가 아닌 특별시·직할시·도 등 광역자치 단체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야당이 단계실시에 있어 광역자치단체 우선 실시를 주장하는 것은 풀뿌리 민주주의 등을 내세우며 읍면동 실시까지 주장하는 것과 상치되는 모습이지만 이는 행정단위가 커질수록 지자제가 갖고 있는 정치성이 부각되고 지방행정 관서를 장악할 수 있다는 점을 계산한 것으로 보인다.
민정당이나 정부는 읍면동의 지자제실시는 엄청난 행정의 낭비만 초래할 뿐 아무런 실익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반대하고 있다.
또 단계실시의 경우 법률이 규정하고 있는 시군구부터 우선 실시하려는 입장이다. 외국의 경우도 하위 행정단위부터 시작돼 상위단위로 발전되는 것이 상례이므로 야당의 광역 자치단체 우선 실시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태도다.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자치단체장의 선출문제다.
현재 지방자치법 86조는「자치 단체의 장은 선거에 의하여 선출한다」고 하고 있지만 부칙 5조에「따로 법률로 정할 때까지는 정부에서 임명한다」고 규정되어 있어 사실상 임명제를 그대로 유지토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야권3당의 입장은 한마디로「직선이외의 방법은 생각할 수도 없다」는 식으로 조금의 신축성도 보이지 않고 있다.
특히 김대중 총재의 경우『관권에 의한 부정선거를 제도적으로 막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치 단체장을 주민들 손으로 뽑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민정당 측은 지자제 실시 초반부터 자치단체장이 직선으로 선출될 경우 행정의 전문성이나 안정성에 심각한 영향을 준다는 이유를 들어 반대하고 있다.
특히 지난 총선을 통해 드러난 지역감정을 해소하기는커녕 완전히「연방 공화국」처럼 만들어 버릴 소지가 있다며 강력한 반대 의사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어느 정도 지방색을 완화시키고 난 다음에 자치 단체장을 주민의 손으로 뽑는 것이 올바른 수순이라는 설명이다.
정당의 참여문제 역시 여야의 견해가 충돌하고 있는 대목이다.
현재 법률에는 지방의회 의원 선거에 있어 각 후보들은 소속정당을 표방할 수는 있지만 정당의 공천은 받지 않도록 되어있어 정당 참여의 통로가 막혀있다.
주민들의 생활문제를 다뤄야할 지방의회가 중앙정치의 희생물이 되게 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민정당 측 얘기지만 야당 측은 정당 참여는 당연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만약 지자제가 전면적으로 실시되고 상당수의 대도시와 일부지역을 야당이 장악하면 중앙정부의 권한은 크게 약화될 것이다. 정부·여당 측은 이럴 경우 아직 각시도의 재정 자립도가 충분치 않은 만큼 지방재정 교부금 같은 것으로 조종할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 얄팍한 발상이 될 공산이 크다.
그보다는 오히려 야당도 지방에서나마 행정을 맡게 된다면 진정한 정당으로서의 경륜 축적·인물 육성을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커다란 정치적 책임도 함께 떠맡아야 한다는 점에서 우리 정치의 흐름을 바꾸는 한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대국적 판단이 필요할 것이다. <이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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