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이산 상봉단 한때 귀환 막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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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남측 이산가족들이 북측의 SBS기자 귀환 요구로 인해 출발이 지연되자 해금강호텔 로비에서 쉬고 있다. [금강산=연합뉴스]

북한이 금강산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취재하던 남한 기자의 보도 내용을 문제삼아 취재를 제한하고 상봉단의 귀환까지 한때 지연시켜 파문이 일고 있다. 이로 인해 상봉단 99가족(149명)과 남측 지원 인원, 취재진 일부는 당초 예정시간보다 9시간 늦은 22일 오후 11시10분쯤 금강산을 출발해 23일 새벽에야 강원도 속초로 귀환했다.

◆ 볼모가 된 고령 이산가족=이산가족 상봉을 둘러싼 초유의 파행 사태가 일어난 건 북측이 상봉 첫날인 20일 남측 TV방송의 취재 내용을 문제삼으면서다. 북측 보장성원(진행요원)은 현지에서 제작한 SBS와 MBC 등 남측 방송의 보도물을 걸고넘어졌다. 남측 공동취재단 소속 TV방송 기자들은 37년 만에 상봉한 납북 어부 천문석씨 부부의 만남을 현지에서 보도하면서 '납북'과 '나포'란 표현을 썼다.

그러자 북측은 21일 문제가 된 SBS 한모 기자와 MBC 진모 기자의 현장접근을 막았다. 오전 10시부터 잡혔던 가족 간 개별 상봉까지 일방적으로 취소했다. 남측 가족들은 북측 가족을 다시 못 보는 게 아니냐며 불안에 떨었다. 북측은 예정시간보다 7시간이 지난 오후 5시에야 개별 상봉을 하게 했다.

남측 공동취재단은 북측이 일부 기자에게 취재제한 조치를 취한 것은 부당하다며 22일 작별상봉 취재를 강행했다. 하지만 북측은 자신들이 지목한 SBS 기자가 철수하지 않으면 이산가족들을 내보낼 수 없다며 귀환 수속을 막았다. MBC 진 기자는 이날 서울로 귀환하기로 예정돼 있어 문제가 없었으나 SBS 기자는 25일까지 현지에 머물며 이산상봉 2진의 만남을 취재할 계획이었다.

이 바람에 고령의 이산가족들은 버스에서 내려 숙소인 해금강호텔 로비에 머물며 초조한 시간을 보냈다. 남측 정부와 취재진의 입장이 완강하자 북측은 결국 오후 8시쯤 "금일 출국 예정인 인원은 나가도 좋다"며 이산가족들의 귀환을 허용했다. 문제가 된 SBS 기자도 신변위협 등을 우려해 이산가족들과 함께 철수했다.

◆ 북측 왜 이러나=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 것 같다. 우선 북측이 '납북자' 표현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것은 과거의 납치행위가 부각돼 가뜩이나 악화된 대북 인권 여론 등에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한 때문으로 풀이된다. 또 이산상봉에 납북자를 포함시키고 적십자 회담에서 납북자.국군포로 문제를 논의하고 있는 등 나름대로 '성의'를 보이고 있는 것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데 대한 불만일 수도 있다.

정부 당국은 북측이 과거엔 그냥 넘어가던 문제를 새롭게 들고나온 점에 주목한다. 2001년 2월 대한항공 여승무원 성경희(1969년 12월 납북)씨가 남측 어머니를 상봉할 때는 남측 언론이 '납북자' 표현을 써도 제지하지 않았었다. 이번 주말에 시작되는 한.미 전시증원연습(RSOI) 등에 대한 불쾌감과 함께 대북 지원을 더 얻어내기 위한 의도라는 분석도 있다.

금강산=공동취재단,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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