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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사다하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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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타율 1할6푼1리에 삼진 72개. 홈런은 고작 7개. 1959년 요미우리 자이언츠 입단 첫해의 오 사다하루(王貞治) 성적표는 보잘것없었다. 포지션은 1루. 첫 안타는 27번째 타석 때 나왔다. 홈런이었지만. 성적은 3년차까지 바닥권이었다. "왕(王)은 왕인데 삼진왕"이란 비아냥을 듣는다.

그가 슬러거로 거듭난 것은 62년. 외다리 타법을 익히면서다. 타이밍을 맞추기 위한 고육지책이 대박을 부른다. 그해 38개의 아치를 그리면서 일약 홈런왕에 올랐다. 이후 그는 일본 프로야구의 기록 제조기가 된다. 7경기 연속 홈런에 홈런왕 15회, 타점왕 13회, 최다 출루 12회, MVP 9회…. '세계의 오'란 별칭이 따라다녔다. 그의 신들린 방망이를 견제하기 위한 방안은 갖가지였다. 경원(敬遠)은 그 으뜸. 덕분에 62년부터 18년 연속 사구(포볼)왕 자리도 놓지 않았다. 히로시마는 수비 때 야수 6명을 타구가 많은 라이트 쪽에 포진시키기도 했다.

통산 홈런은 868개. 메이저리그 행크 애런(755개)보다 많지만 세계의 홈런왕으로 기네스북엔 오르지 못한다. 일본의 구장이 좁다는 이유에서다. "내 고유의 배팅이 되지 않는다." 80년 그는 22년간의 선수 생활을 접는다. 등번호 1번은 자이언츠의 영구 결번이 됐다. 하지만 그의 인기는 팀 동료 나가시마 시게오에게 눌렸다. 재일 대만인이었기 때문일 게다. 지금도 그는 중화민국(대만) 국적을 갖고 있다.

야구 지도자의 길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84년부터 5년 동안 자이언츠 감독을 맡아 리그 우승 1회에 그친다. 95년엔 만년 꼴찌 다이에 호크스(현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지휘봉을 넘겨받아 온갖 수모를 겪는다. '제발 부탁이니 그만두라, 사다하루'. 관중석엔 이런 플래카드가 나부꼈다. 팀 전용 버스에 성난 관중이 던진 달걀이 날아들었다. 인고(忍苦)의 세월-. 그는 호크스를 일류팀으로 변신시켰다. 일본시리즈를 두 번이나 제패했다.

그의 철학은 이음새 야구. 자신의 본령과 달리 도루.단타.번트를 축으로 하는 스몰볼(small ball)을 중시한다. 재미있는 야구가 아닌 이기는 야구다. 그가 21일 일본대표 감독으로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을 정복하고 헹가래 세례를 받았다. 감독으로서도 '세계의 오'가 됐다. 운이 따랐다. "이렇게 압박감이 큰 줄 몰랐다. 야구는 스포츠 중에서 최고다. 세계에 일본 야구를 인식시켰다." 오 사다하루의 신화는 끝나지 않았는가.

오영환 정치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