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박보균 칼럼

문재인 방식, 노무현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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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박보균
박보균 기자 중앙일보
박보균 칼럼니스트·대기자

박보균 칼럼니스트·대기자

문재인의 언어는 도전적이다. “당당하고 결연히 대응하라”-. 미국의 통상압박에 대한 문 대통령의 반박이다. 그 말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겨냥했다. 미국의 공세는 파상적이다. 세이프 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가 발동했다. 이번엔 철강수입규제 권고(53% 고율 관세)다. 한국산이 표적처럼 들어갔다.

“미국에 할 말 해야” 노무현은 #자주와 통상을 영리하게 묶어 #트럼프 공세는 ‘한국 길들이기’ #북한의 평창 공세 안 먹혀 #우리 민족끼리, 응원 흥행 저조 #통상·남북·안보는 상호 순환

문 대통령의 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올린다. “미국에 할 말은 해야 한다”-. 노무현의 레토릭은 도발적이었다. 그 시절 젊은 세대에게 신선하게 다가갔다. 문재인의 청와대는 외교와 안보의 분리다. “안보와 통상의 논리는 다르다는 게 문 대통령의 생각”이라고 한다. 그것은 노무현의 접근과 비슷하다. 노무현은 임기 초부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겨냥했다. 노 대통령은 “한·미 동맹이나 국내 정치적 요소를 의식하지 말고 장사꾼 논리로만 협상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실제로 전개되는 풍광은 달랐다.

노무현은 안보와 경제의 연관성에 주목했다. 그의 방식은 자주와 통상의 영리한 조합이다. 그는 이라크에 두 차례 군대를 보냈다. 파병은 군사동맹국으로서의 결단이다. 부시 미국 대통령은 고마워했다. 하지만 지지층의 반발은 거셌다. 노무현은 안보동맹을 경제동맹으로 확장했다. 그때도 통상본부장은 김현종이었다. 김현종은 장사꾼 논리를 매력적으로 실천했다. 한·미 FTA는 노무현의 역사적 성취다. 문재인 정권의 586 참모들은 그 공적을 제대로 인정한 적이 없다.

노무현의 업적은 역설로 확인된다. 트럼프는 한·미 FTA에 대해 수시로 푸념한다. “우리에게 매우 나쁜 거래다.”(13일 백악관) 노무현의 권력공간에는 반미·자주의 운동권 감성이 풍성했다. 하지만 뒤편에서 노무현의 실용적인 고민은 치열했다. 지금의 586 참모 대부분은 그런 전략적 고뇌에 익숙하지 않다.

트럼프 거래의 출발은 판을 크게 벌이기다. 이를 위해 상대편의 심기를 건드린다. 미묘한 어휘를 동원한다. 트럼프는 “이른바 동맹국들도 무역에 대해선 동맹국이 아니다”고 했다. 그는 동맹과 무역을 나누는 듯했다. 하지만 트럼프 수법의 실천은 다르다. 경계선은 모호하다. 그는 안보와 통상을 교묘히 엮는다. “미국은 6·25전쟁 때 한국을 도왔다. 한국은 부유해졌으니 이제 미국에 갚아야 한다.” 그의 말 속에 불만이 배치돼 있다. 북한 핵 제거는 그의 우선적 정책과제다. 문재인 정부와의 북핵 공조는 여러 번 엇박자를 냈다.

박보균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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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핵잠수함(텍사스호)이 1월 18일 부산항에 들어오려 했다. 한국 해군은 난색을 표시했다. 진해항으로 입항 변경을 권유했다. 하지만 텍사스호는 뱃머리를 일본으로 돌렸다. 그런 경우는 군사동맹에서 전례가 드물다. 그것은 미국 군부를 자극했을 것이다. 한국은 평창올림픽의 평화를 중시했다. 트럼프의 통상 공세는 이런 불만의 반영으로 비친다. 한국을 거칠게 길들이려는 듯하다.

문재인 정부는 평창을 활용한다. 이런 불편한 상황을 일거에 해결하려는 듯하다. 이를 위해 두 사안에 주력했다. 북·미 대화의 중재와 남북 화해 분위기의 생산이다. 하지만 소득은 크지 않다. “평창 개회 다음 날(10일) 펜스 부통령과 김여정 제1부부장이 청와대에서 만나기로 한국과 미국, 북한 간에 합의됐다. 그러나 불발됐다.”(워싱턴 포스트) 북한은 만남 2시간 전에 취소했다. 그것은 펜스의 북핵 강공 자세에 대한 부담 때문일 것이다.

북한의 평창 등장은 요란했다. 하지만 북한 ‘미녀 응원단’의 흥행은 예상을 깼다. 그들의 기대치에 미달이다. 그들은 일사불란하다. “우리는 하나다, 잘한다”고 외친다. 초등학교 운동회 함성과 비슷하다. ‘고향의 봄’ 노래는 경기장 열기와 어울리지 못한다. 한국 젊은 세대는 공정성과 세계화를 추구한다. 북한 응원 스타일은 우리 2030 세대를 잡기 힘들다.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영남도 평창에 왔다. 그는 김여정에게 자리를 양보하려 했다. 북한은 34세(김정은)·29세(김여정) 오누이의 기괴한 지배 체제다. 그것은 90세 김영남의 권력 생존 노하우일 것이다. 하지만 그 장면은 연민과 환멸을 낳는다. 북한의 평창 공세는 저조했다. 문재인 정부의 구상도 차질이 빚어졌다. ‘우리 민족끼리’의 전성기는 끝났다.

문 대통령은 속도 조절을 하고 있다. 그는 남북 정상회담에 대해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는 격”이라고 했다. 그것은 적절한 숨고르기다. 한·미 동맹, 통상, 남북관계는 상호 교차, 순환한다. 평시에는 분리된다. 결정적인 순간에는 결합된다. 핵심 요소는 북한의 비핵화다. 한국의 지정학적 숙명 때문이다. 문 대통령의 ‘한반도 운전대’와 통상외교는 나눠지고 합쳐진다.

박보균 칼럼니스트·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