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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보균 칼럼

돈 벌기 투쟁, 민주화 투쟁만큼 힘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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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박보균
박보균 기자 중앙일보
박보균 칼럼니스트·대기자

박보균 칼럼니스트·대기자

586세대(옛 386)의 귀환은 화려했다. 그들은 문재인 정권의 간판이다. 그들의 권력 복귀 이후는 강렬했다. 이벤트의 감성정치는 세련됐다. 그들이 생산하는 언어는 위력적이다. 그 모습은 10년 퇴장 동안의 각오와 숙련으로 비춰졌다. 하지만 어느 순간이다. 풍광의 한쪽이 헝클어졌다. 경제 쪽은 들쑤심과 혼선이다. 최저임금 인상, 일자리 늘리기, 강남 집값, 암호화폐 정책은 혼란스럽다.

586세대 권력 복귀 뒤에 #세련된 말과 감성정치 과시 #경제 혼선 속엔 민주화 우월감 #마키아벨리 “인간은 부모의 #죽음보다 재산상실 기억한다” #암호화폐 논란 2030에 각인

586의 상징은 민주화 투쟁이다. 타도 대상은 전두환 독재다. 1987년은 상징의 정점이다. 그 세대의 서사는 여러 가지다. 취업 걱정이 없었다. 그 시절 대학엔 대기업 취업 서류가 쌓였다. 졸업생들은 직장을 골랐다. 그것은 전두환 시대의 경제 호황 덕분이다. 그 행운은 기묘한 역설이다. 97년 말에 IMF 외환위기가 닥쳤다. 감원과 퇴직의 칼바람은 그들의 윗세대에 집중됐다. 586의 행운은 이어졌다.

돈 벌기는 투쟁이다. 젊어선 취업 고통 속에서 안다. 나이 들어선 외환위기 같은 처절함 속에서 절감한다. 586세대는 그런 경험과는 상대적으로 멀었다. 듣는 지식과 겪은 지식은 다르다. 그것 때문일 것이다. 그들의 민생 쪽은 여전히 원론적이다. 정책의 짜임새와 절박함은 떨어진다.

‘사람 중심’은 문재인 경제의 구호다. 온정주의가 넘친다. 온정주의 정책은 선의로 출발한다. 그것은 세금을 동원하고 의지한다. 그런 정책의 논란은 끊임없다. 공무원 증원부터 그랬다. 세금으로 일자리를 만들기 때문이다. 최저임금 인상도 비슷하다. 작은 업체의 노동자에게 1인당 13만원을 준다. 그것은 세금 풀기다. 하지만 세금엔 서민들의 피땀도 담겨 있다. 서민 세금으로 생색낸다는 의심을 산다.

상당수 영세 자영업자는 반발한다. “세상 이치에 둔감하다”는 게 현장의 소리다. 최저임금 인상의 한편엔 일자리 잃기의 탄식이 있다. 돈 벌기 세계는 복잡하다. 선의가 선정(善政)을 보장하지 않는다.

박보균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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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6세대의 민주화 우월감은 독특하다. 근거는 충분하다. 그런 감정은 정책에 반영되기 쉽다. 그 우월감은 시장과 충돌한다. 암호화폐 논란은 그런 불화의 반영일 것이다. 암호화폐는 젊은 세대의 돈벌이 투쟁이다. 2030세대의 기발한 욕망이 담겨 있다. 그것은 블록체인 기술의 신속한 착안이다. 그 세계는 일확천금 투기와 선제적 투자의 경계를 넘나든다.

정부의 판정은 일방적이다. 투기의 광풍으로 규정했다. 그 판단에는 도덕적인 규율이 짙게 담겨 있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떠오른다. “군주는 타인의 재산을 손대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인간이란 부모의 죽음은 쉽게 잊어도 재산의 상실은 좀처럼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말은 권력과 민생의 기묘한 관계를 해부한다. 암호화폐의 가격 하락은 재산 상실이다. 투기든 투자든 시장에서 먼저 정리돼야 한다. 정부의 접근 자세는 위압적이다. 시장의 조정 과정을 기습하듯 생략했다. 그것은 청년세대의 돈 벌기 고통에 둔감해서다. 그 상실감은 정책에 대한 미움으로 꽂힌다. 2030의 분노와 좌절의 기억은 오래갈 것이다.

강남 집값 잡기의 강도는 높아진다.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 재건축 허용 연한의 연장과 보유세 강화 검토로 이어진다. ‘노무현 시즌 2’냐 아니냐의 양상으로 전개된다. 강남의 재건축 시장은 잡아야 한다. 하지만 전망은 불투명하다. 묘수는 없다. 엇박자도 나온다. 아파트 값의 구성 요소는 여러 가지다. 자녀 교육도 결정적이다. 교육부의 자사고·외고 폐지 움직임이 있다. ‘강남 8학군’의 기세가 확장할 조짐이다. 그런 조짐이 가격 하락을 막는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정치권에서 단련됐다. 정치판에서 그의 순발력은 두드러졌다. 그것은 쟁점을 낚아채는 말솜씨 덕분이다. 하지만 부동산 세계는 다중적이다. 숨겨진 욕망과 감춰진 질투는 미묘하다. 그 세상은 하나로 평정되기를 거부한다. 도덕적 원리주의 냄새가 날수록 정책은 표류한다.

부동산 정책의 첫 깃발은 김수현 청와대 사회수석이 들었다. 그의 산하에 교육문화비서관이 있다. 사회수석실의 주력은 집값 잡기에 쏟는다. 다른 한쪽에선 자사고 폐지에 골몰한다. 부동산 정책은 그런 모순 속에서 파괴력을 잃는다.

문 대통령은 규제혁파를 외쳤다. “시도된 적 없는 과감한 방식, 혁명적 접근이 필요하다.” 그 다짐은 힘 있게 실천돼야 한다. 기업의 어려움은 규제에서 비롯된다. 민주화 투쟁은 힘들다. 돈 벌기 투쟁도 어렵다. 그 투쟁의 집약이 산업화다. ‘사람 중심’ 경제의 성취는 그 어려움을 알아야 가능하다. 그것으로 586세대의 경제는 도약한다. 386 시절의 진영논리에서 벗어난다. 경제를 세련되게 다루는 정책이 나온다.

박보균 칼럼니스트·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