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신나는 불안|이시형 <고려병원·신경정신과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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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불안이라고 다 괴로운가, 신나고 즐거운 불안도 많다. 데이트약속에 잠을 설쳐야 했다. 설렘속에 밥도 먹을수 없다. 아! 하지만 이건 얼마나 달콤한 불안인가.
아슬아슬한 서커스·자동차경주등을 보느라면 손에 땀이 난다. 행여 떨어지랴, 숨이 막힌다. 하지만 이건 또 얼마나 짜릿한 맛인가. 우리는 이런 불안을 즐기고 있다. 고속도로의 스피드광들은 더욱 신날것이다. 삐꺽하는 순간이면 끝장이다.
경찰에 잡히는거야 약과다. 순간의 실수가 목숨을 앗아간다. 하지만 이들은 신나게 달린다. 죽음의 불안속을 달리는 것이다. 이를 즐기려다 수많은 젊은이가 목숨을 잃었다. 그러기에 이들에겐 스릴만점이다.
맹수 조련사·고공낙하·바위타는 산사나이를 보통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들다. 죽음의 벼랑 길을 달리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불안을 즐기고 있는게 사실이다. 마치 우리가 탐정영화를 즐기듯이.
인간에겐 불가사의한 면도 많다. 불안을 즐긴다는건 자학이다. 자신을 못살게 굴면서, 한편 그 자체를 즐기고 있다니 말이다. 따지고 보면 스포츠나 게임도 예외가 아니다. 하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이나 다같이 불안을 즐기고 있다. 불안을 스포츠라는 이름으로 상품화시켜 놓은 것이다.
불안이 따르지 않으면 스릴도, 자극도 없다. 재미도 물론 없다. 화투놀이도 돈을 걸어야 재미가 난다. 잃으면 어쩌나하는 불안이 걸리기 때문이다. 운동시 손도 편이 있어야 재미있다. 지면 어쩌나하는 불안이 따르기 때문이다. 져도 그만, 이겨도 그만이라면 재미는 반감한다. 일방적인 게임은 자기편이 이겨도 재미없다. 시소게임의 질것같은 불안이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불안은 괴롭다. 하지만 그러기에 좋다는 사람도 많다. 그래야 살맛이 난다는 사람, 사는것같은 기분을 느낄수있는 사람이다. 스포츠나 서커스만은 아니다. 병사중에도 많고 우리 주변에도 적지않다.
「헤밍웨이」의 일생은 불안, 바로 그것이었다. 죽음의 불안과 함께 한평생이었다.
1, 2차대전에 자원 참전한것도 그렇고 남의 나라 내전에까지 깊숙이 관여했던것도 우리 상식으로는 납득이 안가는 일이다. 수많은 부상으로 죽을 고비를 몇번이고 넘겼다. 그는 작가이전에 영웅이었다. 어떤 작품상보다 전쟁에서 무공훈장을 먼저 받았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취미인 맹수사냥도 그렇고 투우를 사랑한 정열밑에는 죽음에의 불안이 깔려있었던 것이다.
불안은 삶의 자극제다. 강렬한 삶을 추구하는 사람에겐 강한 자극이 필요하다. 조용한 생활보다 역동적인 삶을 원한다면 불안의 동반은 필수적인 것이다. 도전과 스릴·투쟁·개척·변화등은 불안없이 이뤄지지 않는다. 불안을 수용하는 차원을 넘어 이를 즐기는 사람이다. 불안없는 생활은 권태롭다고 한다. 재미가 없다고들 한다. 해서 이들은 불안을 자청한다. 그래야 생기가 돌고 눈이 빛난다.
신나고 스릴 넘치는 삶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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