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연중 무휴 국정감시도 가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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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막강 국회>
「여소 야대」의 13대 국회는 공동작품을 만들어내야 할 화가들의 붓을 기다리는 백지 화폭 같다.
이 백지에 제대로 된 그림이 그려질지, 아니면 실패작이 되어 구겨져 버려질지는 과거 경험이 전무해 예측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여야의 입장에 따라 낙관과 비관이 엇갈리고 있다.
새 국회는 야당 측이 마음만 먹으면 종전과는 전혀 판이한 모습으로 달라질 수 있다.
벌써부터 야당 일각에서는『지금까지 여주도 국회라는 타성에서 벗어나자』는 소리가 일고 있다.
민정당이 국회의장을 차지하고 다른 두 야당이 부의장을 차지하면 될 것이라고 안이하게 생각했던 의장단 구성에 있어서도『다수의 야당이 의장자리 못 차지하란 법이 없지 않느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또 민정당이 그리고 있던 국회 운영방식을 완전히 뒤집는 그림도 모색되고 있다.
지금의 국회법은 제5공화국이 생길 때 입법회의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의사활동의 능률화란 명목으로 발언시간을 제한하는 등「규제」에 초점이 두어진 것이다.
야당 측즉은 이를 모두 풀어버릴 작정이다.
입법회의 국회법의 상징인 국회의「오후개의」를 오전 개의로 바꾸는데서부터 발언 시간 제한의 철폐, 의원의 면책특권 등을 확실히 보장할 계획이다.
가장 주목되는 것은 국회 운영방식의 변경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민정당이 종전처럼 13개 상임위에서 일부 기능을 나눠 상임위 숫자 늘리는 방법을 강구하고 있는데 반해 야당 측은 예산·결산위의 분리, 상설화를 추진할 계획이다.
만약 예산·결산위가 상설기구가 되어 연중무휴로 열리면 행정부는 국회의 감독아래 놓여질 것이다. 상설 예결위는 소국회의 구실을 할 가능성도 많다.
국회의 회기제한이 철폐되어 국회와 상임위가 자주 열리게 될 것이다.
특히 중요 정치 현안에 대한 특위·소위들이 여러개 설치되어 여러 가지 민감한 문제를 조사하기 시작하면 모든 관심이 국회로 쏠릴 수밖에 없게된다.
국회의 조사 기능이 강화되고 청문회 제도 등이 도입되면 특위·소위에서의 환문·증언 등 조사활동이 큰 기능을 갖게될 것이다. 가뜩이나 광주사태·제5공화국 비리 등 민감한 현안들이 깔려 있어 이런 사건에 대한 조사는 국회의 역할에 대한 인식을 바꿔놓을 것으로 보인다.
전통적으로 여당이 독식하던 상임위원장 자리도 여야가 나누어 갖게 되었다.
현재로는 의석 비율로 나눈다는 원칙에 접근되어 있는 만큼 의장단 3석과 13개 위원장 자리 등 16석을 기준할 때 민정·평민·민주·공화당에 7대4대3대2로 배분될 가능성이 높다.
이제는 많은 상임위가 야당 위원장의 사회에 야당의원 수가 더 많은 상태로 운영될 수밖에 없어 국회가 과거처럼 정부·여당의 뜻대로 일사천리로는 진행될 수 없게 되었다.
이런 점을 고려해 민정당은 최소한 국정 운영의 근간이 되는 운영·외무·내무·재무· 국방·법사위만은 여당이 위원장을 맡아야 한다고 야당에 협조를 구하고 있으나 제1야당인 평민당이 내무·재무위원장 중 한자리를 요구하고 있어 배분에도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
개원 협상에서는 여야간 게임 규칙이 되는 국회법 개정문제도 거론될 것으로 보이는데, 특히 새 헌법은 국회의 자율성과 권한을 대폭 강화시킨 만큼 이에 부응하는 국회법을 만들어야한다.
우선 지금까지 1백50일을 초과할 수 없던 회기제한 규정이 삭제돼 국회가 상설화 될 수 있는 기회를 얻어 싫든 좋든 정부는 매 주요사안을 그때그때 국회에 보고하지 않을 수 없게됐다.
또 회의 진행과 관련해 △오후에 열리게 되어 있는 본 회의를 오전으로 바꾸고 △TV·라디오를 통해 회의 내용을 생중계하며 △상임위는 외국과 같이 일문일답식으로 진행하고 대신 장·차관 뿐 아니라 정부부처의 국장급 정부 위원도 답변시키며 △본회의 질문 시간을 조정하는 문제도 여야간에 검토되고 있다.
이러한 형식의 변화뿐 아니라 권한 강화에서 오는 기능의 변화도 불가피하게 됐다.
대통령의 비상 조치권·국회 해산권이 삭제되어 국회를 초헌법적인 조치에 의하지 않고는 어쩔 도리가 없어졌으며 대신 국회는 국정감사권을 가짐으로써 과거보다 강도 높은 국정통제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여당은 국정감사의 부작용을 우려해 과거처럼 정례적으로 실시하는 일반감사는 없애고 사안에 따라 수시로 하는 특별 감사만을 두고 싶어하는 눈치나 야당이 들어줄 것 같지 않다.
국정 감사는 정부의 재정·행정 등 모든 분야를 간섭할 수 있어 무소불능의 수단으로 이용될 소지도 있다.
이렇게 권한이 강화된 국회에다 야당이 과반수를 차지하게 되어 과거에는 생각지도 못하던 일들이 국회에서 일어나게 되어 있다.
예산이 제때 통과되지 않아 준예산으로 운영될 수도 있으며 국무총리·대법원장·감사원장 임명동의가 부결되어 새 인물을 다시 임명해야 하는가 하면, 국무위원 해임 건의안이 통과되어 본의 아니게 장관을 바꾸어야 할 경우도 상상할 수 있다.
또 정부·여당이 의도했던 법안이 통과되지 않고 엉뚱한 수정법안이 통과될 가능성도 많다.
인적 구성면에서도 3김씨가 의회에서 직접 진두지휘를 함으로써 국회의 비중이 어느 때보다 높아질 것이며 과반수가 넘는 1백67명이 초선의원인데다 운동권·노동·농촌출신의 진보적 성격을 떤 재야인사가 20여명이나 당선돼 이들의 행동반경도 무시할 수 없게 됐다.
반면 공화당 간판을 업고 과거의 노련한 관료군도 대거 참여해 질의·답변에서 어물쩡 넘어갈 것 같지도 않다.
이제야말로 국회가「통법부」라는 오명을 벗고 여야의 진정한 실세가 반영된 정치의 양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왔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게임이 합당한 게임으로 성립되기 위해서는 규칙이 준수돼야 한다는 점을 여야가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문창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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