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벨로루시 대선 인정 못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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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 찬바람이 불고 있다. 19일 치러진 벨로루시 대선 때문이다.

이번 선거에서는 러시아와 가까운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이 압도적 표차로 승리, 3선에 성공했다. 그는 1994년부터 벨로루시를 철권통치해 온 독재자다.

미국은 이에 대해 "선거 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며 초강수를 두고 나왔다. 부정선거를 이유로 재선거를 요구하는 야당.시위대의 편을 든 것이다. 유럽연합(EU)도 벨로루시에 대한 각종 제재조치를 검토하겠다며 거들고 나섰다. 반면 러시아는 "양국 관계가 돈독해질 것"이라며 흡족한 표정이다.

◆ 색깔 혁명 끝나나=벨로루시는 1991년 소련에서 독립한 나라다. 비슷한 시기에 독립한 소련 출신 국가들에서는 최근 몇 년 사이 친(親)서방 민주화 운동이 잇따라 성공해 왔다. 2003년 그루지야의 장미 혁명을 시작으로 2004년 우크라이나의 오렌지 혁명, 2005년 키르기스스탄의 레몬 혁명이 있었다.

각각 특정한 색깔을 전면에 내세웠다고 해서 한데 묶어 '색깔 혁명'이라고도 불린다. 벨로루시에서도 올해 선거를 앞두고 '데님(청바지용 천) 혁명'이란 말이 나왔다. 그러나 결과는 현재까진 실패다.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은 벨로루시 대선 결과가 동유럽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을 키우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풍부한 자원을 무기로 옛 영광의 재현을 노리고 있는 러시아다. 올 초에는 천연가스 공급을 틀어막아 우크라이나의 친서방 정권에 본때를 보이기도 했다.

미 백악관 스콧 매클렐런 대변인이 "이번 선거가 체포.폭력.부정이 포함된 공포 분위기 속에서 치러졌다"며 "미국은 재선거 요구를 지지한다"고 말한 배경에도 러시아에 대한 견제가 적잖이 깔려 있다.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EU도 마찬가지다. EU는 루카셴코 대통령을 포함한 벨로루시 고위 지도자들의 입국 금지 조치를 검토하고 나섰다. 러시아의 입장은 정반대다. 루카셴코 정권이 성공해야 그루지야.우크라이나 등의 '배신자'들에게 뭔가를 보여줄 수 있다. 푸틴 대통령이 직접 축전을 보낸 것도 그래서다. 러시아 외무부는 "이번 선거는 모든 측면에서 국제 기준에 부합했다"며 서방과 정반대의 주장을 폈다.

◆ 냉가슴 앓는 미국=미 국무부 숀 매코맥 대변인은 "재선거를 요구하는 벨로루시의 야권에 대한 미국의 지원은 수사적"이라고 말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20일 보도했다. 그는 "워싱턴은 재선거를 지원할 어떠한 구체적 수단도 결정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매클렐런 백악관 대변인의 강경한 태도와는 사뭇 다른 입장이다.

사실 미국이 벨로루시 제재에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은 많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미 정부 관계자는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은 벨로루시와 경제.외교 관계가 별로 없다"며 "따라서 쓸 수 있는 방법도 별로 없다"고 털어놨다.

김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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