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타협과 견제」…막후 정치 활기 띨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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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국회의 모습과 정치의 흐름이 종래와는 판이하게 달라질 전망이다.
인위적이고 도식적이었던 5공화국의 다당제 구도와는 전혀 달리 실제적 지지 기반을 배경으로 한 4당 체제가 짜여진데다 헌정사상 초유의 여소 야대 구조가 되어 정치의 질적·양적 변화가 필연적 추세로 다가서고 있다.
어떤 당도 독자적으로 결정권을 행사할 수 없게된 이번 총 선거의 기묘한 결과는 정국전망을 낙관도 비관도 할 수 없는, 그야말로 복잡한 상황을 창출해 놓았다.
일반적으로 여당 측과 기존 체제파들이 미래의 정치에 대해 불안감을 느껴 비관적으로 전망하는데 반해 야당 측과 일부 진보적 계층은 모처럼 제대로 정치를 발전시킬 수 있는 절묘한 여건을 조성해 놓았다고 긍정적으로 보는 등 여야가 극단적으로 상반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특히 지난 대통령 선거 이후 퇴조의 기미를 보이는 듯했던 3김씨가 이번 선거에서 다시 지역 기반을 뒷받침으로 부활해 앞으로의 정치는 본격적인 1노 3김의 분할체제 모습을 선보일 전망이다.
3김씨의 정치 무대로의「김의 견향」과 함께 지난날 제도 정치권을 때로 위협했거나 무력하게 만들었던 재 야권이 부분적으로나마 양내로 흡수·수용된 점도 정치 활성화라는 새 모습에 기대를 갖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국회가 명실상부한 정치의 본령이 되고, 때문에 정부가「행정부의 시녀」쯤으로 여기던 국회 상이 사라져 국회의 협조를 받지 않고는 앞으로 어떤 일도 제대로 추진할 수 없게 돼 「국회우위현상」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이들 4개 정파 지도자들이 정치발전이라는 과제를 놓고 어떻게 타협하고 협력하며 합종연형하는가에 따라 정국이 절대적 영향을 받을게 확연하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여건 야건 간에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음은 지극히 고무적인 현상이라 아니할 수 없다.
여당 측도 독식과 작전 개념 식의 일방적 정치행위로 특징지어진 과거의 정치양태를 반성, 지양하려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야권은 독재 체제하에서 살아남기 위한 수단으로 구사했던 반대와 항거의 강성체질을 연성체질로 바꾸려는 태도를 보여 여야가 일단은 현실 적응의 노력을 보이는 상황을 조성하고 있다.
이런 새로운 정치의 모습은 곧 있을 개원협상, 3김 회담, 그리고 앞으로 있을 1노 3김의 4자회담 등에서 가시화 될 전망이다.
최대 관심사로 부각되고 있는 3김 회담은 여권에 대응하는 야권의 정국운영 기조에 대한 조정자적 역할을 할 것으로 관측되어 금후 정국추이의「그림」을 드러낼게 틀림없다. 이는「여 측의 행정부 지배, 야권의 국회지배」라는 구조하의 정국 주도권과도 직결되는 중대한 정치적 행사가 될 것이다.
정치적 노선 차이는 있지만 지지 기반의 지역적 할거현상 뿐만 아니라 3야당 중 어떤 당도 결정적인 우위를 차지하지 못한 바로 그런 취약점 때문에 3김씨는 과거의 반목과 질시를 떠나 싫든 좋든 당분간 협력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3야당이 모두 지역당적 성격을 가져 이 약점을 극복하기 위한 정책정당으로의 전환에 부심하고 있는 것도 생산적 정치상황의 조성에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것 같다.
따라서 3김씨 사이에도 기묘한 형태의 견제와 균형이 이루이질 공산이 짙은데 3김씨, 특히 김대중 평민당 총재의 최근 잇단 유화적 태도 표명은 이같은 정치적 한계 상황을 갈 반영한 것으로 관측된다.
때문에 급박하게 몰아치는 정치 상황이 적어도 올림픽 이전에는 조성되지 않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4당 체제의 첫 고비는 역시 실무적 차원의 개원협상 이후 광주사태, 제5공화국 비리 등의 조사에서 맞게될 것이다.
원 구성에 관한 개원 협상은 여당의 주장대로 관례에 따라 원 구성만 하고 국회법 개정 등 정치절충을 거쳐 광주사태 등 5공화국 유산청산을 위한 논의를 하느냐, 아니면 평민·민주당의 주장대로 개원국회에서 현안을 일단 폭넓게 다루느냐는 등의 문제가 있긴 하지만 4당 모두 처음부터 강경 충돌을 할 생각은 없는 것 같다.
각당 수뇌부들이 최근 밝혀온 다양하고 온건한 유의 견해들을 종합해 보면 앞으로 필연적으로 전개될 광주사태, 5공화국 비리 청산,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의 재산조사 등 주전장을 고려해 ,다소간의 마찰은 있겠지만 개원협상은 대화와 타협이라는 호양의 모습을 그려낼 듯도 하다.
야당 측도 의정운영, 나아가 국정운영의 사실상 한 당사자 입장으로 격상되어 종래와는 달리 책임을 어느 정도 같이 져야한다는 여론의 압력도 있다.
4당 체제의 또 하나 시험무대는 역시 1노3김의 4자 회담, 또는 대통령과 3김씨 간의 개별회담이 될 것이다.
과거 집권 측이 일방적으로 시혜를 베풀듯 가뭄에 콩나기 식으로 운영해서 서로 주장의 교환장소만 됐던 여야 영수회담이 아니라 실질적 대화와 타협이 이루어지는, 고도의 정치력이 발휘되는 양으로 운영될 수 있느냐의 여부가 주목거리다.
4당 체제의 새 정치는 공식 절충보다 막후정치가 더 활발해지고 무게를 지닐 것으로 예측된다.
그러나 4당 체제에 대한 긍정적 기대에도 불구하고 4당 체제의 정국은 기본적으로 아슬아슬한 외 줄타기 상황이 예상되고, 특히 한순간에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질 개연성이 상존하고 있다고 보는게 타당할 것 같다.
우선 이번 국회가 잘못 다루기만 하면 금세 터져 버릴 듯한 광주사태와 5공화국 유산 청산 문제 등 민감하고 미묘한 현안의 난제가 과거 어떤 국회보다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정부·여당의 수구적이고 고식적인 대응이 계속되거나 어느 한 야당이 정국 주도권 행사를 노려 정화된 자세로 몰아붙일 경우 정세는 단박에 일변할 것 같다. 이런 상황은 특히 광주사태 진상조사, 5공화국 비리조사 등에 관한 여권의 소극적 대응이 있거나 올림픽 이후 노 정권의 신임투표 때 폭발할 잠재적 악재들이다.
따라서 전혀 경험하지 못한 여소 야대의 4당 체제 성공 여부는 정부·여당의 발상 전환과 그에 대응하는 야권의 인내·아량 및 타협적 자세가 어떻게 나타나느냐에 달려있다고 하겠다. <이수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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