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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남정호의 시시각각

조건부 한·미 훈련 축소는 어떤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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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남정호
남정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남정호 논설위원

남정호 논설위원

남북 관계의 봄은 잔인한 계절이다. 2011년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은 3·4·5월에 집중적으로 미사일을 쏴 댔다. 실제로 전체 51번의 미사일 도발 중 근 절반인 24번이 꽃피는 시절에 이뤄졌다. 미사일이 날아다니니 비둘기가 깃들 리 없었다.

흑백논리 대신 절충점 찾아야 #대화로 풀려면 타협·양보 필요

무엇보다 3월 초에 시작되는 한·미 연합군사훈련 때문이었다. 이 무렵이면 북한은 준전시체제가 되면서 온통 비상이 걸린다. 남자 주민들은 죄다 동원돼 밤새 훈련에 시달린다. 미군 전투기가 뜨면 북한 비행기도 즉각 이륙한다. 미군이 훈련하는 척하다 실제로 공격할지 모른다는 불안 때문이다. 지난해 11월부터 단행된 중국의 석유류 수출 금지로 기름이 턱없이 부족해진 북한이다. 보통 부담이 아니다. 주민들이 생업을 뒤로하고 동원되면 경제가 잘될 리 없다. 특히 2016년부터 북한 지도부를 치는 참수훈련이 포함되면서 김정은 정권의 반응은 더 거칠어졌다.

이런 연합훈련이 올해는 올림픽 때문에 미뤄졌다 4월 초 실시된다. 키리졸브(Key Resolve) 연습, 독수리(Foal Eagle) 훈련이 시작되면 한반도 정세가 어찌 될지 눈에 선하다. 우선 북한이 가만있을 리 없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재진입 실험이라도 감행하면 예삿일이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그어 놓은 레드라인을 넘는 꼴이 된다. 미국으로서는 그냥 덮고 갈 일이 아니다. 대북 특사가 평양에서 어떤 밀약을 맺은들 다 소용없다. 북한 미사일 한 방이면 대화 국면은 산산조각 나고 언제 미국의 선제공격이 이뤄질지 모른다.

이렇듯 워낙 빤한 수순인지라 대화론자들은 안달이 났다. 진보진영에선 연합훈련 연기·중단 불가피론이 강하게 나오고 있다. 문정인 대통령특보는 지난달 “8월에 을지훈련이 있으니 올해는 연합훈련을 한 번만 할 수 있을 것”이라며 봄 훈련 취소를 주장한 바 있다.

보수파는 절대 안 된다고 맞선다. 군사훈련 연기나 취소는 북한에 대한 굴종일뿐더러 한·미 동맹을 깰 거라고 단언한다. 온 세상이 흑백논리에 빠져 양극단으로 나뉜 느낌이다. 하지만 매사 절충점은 있는 법이다. 효과적인 훈련을 치르면서도 북한의 도발은 막는 묘수 말이다.

연합훈련의 중요성은 한국군과 미군이 손발을 맞춰 보면서 합동작전 능력을 기를 수 있다는 데 있다. 원칙적으로 한 번이라도 거르면 전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잘 들여다보면 규모를 좀 축소하더라도 전력상 큰 손실이 없을 구석도 있다. 예컨대 F-22 랩터 전투기, B-1B 랜서 전략폭격기 등 한반도로 날아올 전략자산의 규모를 좀 줄여 주는 방안이다. 북한이 협상 테이블을 차 버리고 또 도발해도 적당할 때 다시 띄우면 된다.

여기서 중요한 대목은 먼저 북한에서 한반도 긴장 완화를 위한 진정성 있는 조치를 내놔야 한다는 거다. 이미 수소폭탄까지 만든 터라 신형 ICBM 발사 실험을 안 하겠다는 약속 정도는 나와야 한다. 한·미도 이를 명분으로 연합훈련을 줄여 줄 수 있다.

명심할 건 대북 경제제재는 절대 늦추지 말고 계속 옥죄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야 허기진 북한이 대화에 매달리게 된다. 얼마 전 배급 최우선 순위였던 북한 보위성 요원에게도 두 달째 식량이 끊겼다는 보도가 나왔다. 대북제재가 제대로 먹힌다는 증거다.

“내 건 내 것이고, 네 것을 놓고 얘기하자는 이들과는 협상할 수 없다.” 협상의 본질을 꿰뚫은 존 F 케네디 미 대통령의 명쾌한 분석이다. 평화적 대화로 북핵 위기를 풀려 한다면 어느 쪽이든 최소한의 타협과 양보는 필요한 법이다.

남정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