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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정의 귀환 보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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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예영준 기자 중앙일보
예영준 베이징 총국장

예영준 베이징 총국장

12일 평양의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 집무실. 평창 방문을 마친 김여정 제1부부장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들어왔다.

김영남=위원장 동지, 이번 방문은 완전 성공입니다. 남쪽에서 큰 환대를 받았습니다.

김정은=당연하죠. 다 죽어가던 올림픽 흥행에 불을 확 지펴줬으니 남쪽 사람들 우리한테 고맙게 생각해야죠. 여정, 친서 전달 능수능란하게 아주 잘했어.

김여정=오빠 말씀에 따라 제가 특사라고 못을 박았잖아요. 아마 남쪽에서도 특사를 보낼 거예요.

김영남=돌이켜보니 지난해에 핵 무력 완성 선언을 한 게 신의 한 수였습니다.

김정은=하하, 그건 남조선 사람들 자주 쓰는 말인데. 신의 한 수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과학적 정세 판단을 하면 앞이 보입니다. 핵무장으로 자위력 확보에 성공했으니 이제는 민족 화해협력에 나설 차례라고 슬쩍 운을 띄운 겁니다. 마침 평창도 걸려 있으니 남쪽이 비핵화 운운하며 비협조적으로 나오진 않을 것으로 본 거예요. 어때 여정, 이번에 남쪽 대통령, 장관들이 비핵화의 비자라도 꺼내더냐.

김여정=오빠 말씀대로였어요. 그런데 미국 부통령 펜스가 우리를 외면하고 간 걸 보면 전쟁 준비를 하는 게 아닌지 마음에 걸려요.

김정은=걱정 붙들어 매. 일단 우리가 남북 정상회담 카드를 꺼내놨는데 제아무리 트럼프라도 대화하자는 측을 공격할 수 있겠냐고. 두고 보면 알 거야, 남조선 내부 의견이 갈리고, 중국은 회담을 지지한다고 나팔 불고 나올 거고, 결국 제재 전선이 약화되는 거 아니겠어.

김영남=그렇지만 남쪽이 회담에 응해 올까요. 미국 아이들이 훼방 놓을 텐데.

김정은=설령 회담이 무산되더라도 우리가 손해 볼 일은 없어요. 그 책임이 누구한테 돌아가겠소. 우리는 조건 없이 대화를 하려 했는데 남쪽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배후에 미국의 방해공작이 있었다, 이런 결론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럼 우리 갈 길을 가는 겁니다. 자위력을 강화할 수밖에 없다는 명분을 얻는 거죠. 이참에 분명히 말하는데, 핵 무력 완성 선언을 했으니 더 이상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가 없을 거라고들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건 오햅니다. 완성 뒤에도 발전이란 게 있잖아요. 미국 애들 말대로 업그레이드, 필요할 때는 우리 능력을 보여줘야죠. 그들이 믿을 때까지. 그게 싫으면 회담 제안을 받아들이든가 하겠죠. 아, 평창 얘기를 하니 갑자기 스키 생각이 나네. 모처럼 마식령 가서 스키나 타며 남조선 답신을 기다려 봅시다.

(위의 내용은 가상 대화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오해 없으시기를 바랍니다.)

예영준 베이징 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