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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을 논할 자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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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심재우
심재우 기자 중앙일보 뉴욕특파원
심재우 뉴욕특파원

심재우 뉴욕특파원

뉴욕 중심가에서 멀지 않은 코네티컷주 심스베리. 인구 2만3000여 명에 백인 비율이 95.3%에 달하는 전원도시다. 가구당 연평균 소득은 16만 달러(약 1억7600만원)인 부촌이다. 2006년 심스베리 쇼핑몰 안에 ‘데코네일’이라는 네일숍을 차리고 미국에서 낳은 아들 두 명을 키우며 알콩달콩 살아온 황저룽(47)·리샹진(42) 부부. 중국 지린성 출신의 이들은 1999년 미국으로 밀입국해 뉴욕에서 이민생활을 시작한 조선족 동포다.

최근 이들은 이민국으로부터 강제 출국을 집행한다는 통지를 받았다. 5년 전 강제 출국 명령서를 받은 뒤 잠정 유예 조치를 받았으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강력한 이민정책에 따라 실제 출국 조치가 내려진 것이다. 영주권 신청도 했지만 거부당했다. 이민국은 황씨 부부에게 16일까지 중국행 편도 항공권을 제출할 것을 명령했다. 남편 황씨의 발목에 추적장치까지 달았다.

“이 나라에서 20년을 살았습니다. 세금도 꼬박꼬박 내고 죄도 짓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미국인입니다. 그런데 우리보고 나가라고 합니다. 어디로 가야 합니까.”

부인 리씨가 주민들 앞에서 울먹이며 호소하는 모습이 NBC방송의 전파를 탔다. 이들에게 가장 큰 문제는 중국에 한번도 가 본 적 없는 두 아들이다. 중국어가 서툴러 차마 데려갈 수도 없다. 생이별을 눈앞에 두고 있다. 황씨 부부의 안타까운 사연을 접한 심스베리 타운의 에릭 웰먼 의장은 “이 나라의 지도자라면 가족의 가치를 위해 나서야 한다”며 “현재 미국 이민정책은 그 가치들과 완전히 단절돼 있다”고 분개했다.

이민국에 의한 가족 간 생이별은 현재 미국 전역에서 다반사다. 공산 국가도 아닌, 자유를 최고의 덕목으로 삼는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범법자뿐 아니라 미국 사회에서 안정적으로 살아온 이민자들도 가족을 뒤로한 채 추방당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방글라데시에서 미국으로 건너와 30년째 살아온 아흐메드 자말(55) 또한 그런 경우다. 캔자스시티 파크대 화학과 부교수로 일해 온 자말은 최근 세 자녀가 지켜보는 가운데 연행됐다. 비자 신분이 확실한 자말이지만 현재 강제 추방도 가능하다고 한다.

지난해 말 유엔총회는 북한 인권결의안을 13년 연속 채택하면서 이산가족 상봉의 필요성을 새롭게 적시했다. 그만큼 가족의 가치는 침해할 수 없는 숭고한 인권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국정연설 직후 탈북자들을 백악관으로 초청하는 등 북한 인권 문제를 또 다른 압박용 카드로 만지작거리는 중이다. 가족 간 생이별도 불사하는 이민정책으로 수많은 이민자 가족의 눈에서 피눈물을 짜내는 그가 인권을 논할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다.

심재우 뉴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