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청춘만화’ 권상우·김하늘 또 만났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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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그럼에도 두 주연배우, 특히 권상우의 이미지는 이 영화의 중요한 출발점이다. 이 몸짱 스타는 이미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이소룡에 매혹된 고교생을 연기했던 터. 이번에는 그 다음 세대 액션스타 청룽(成龍)을 숭배하는 천진난만한 대학생으로 등장한다. 어려서부터 액션배우가 꿈인 지환(권상우)은 태권도학과에 재학 중인 요즘도 단역.조역 가리지 않고 액션영화의 스턴트맨 활동을 병행한다. 연극영화과 학생 달래(김하늘)는 이런 지환과 초등학교시절부터 같은 동네에서 줄곧 자라 서로 집안의 숟가락 숫자까지 훤히 알 만한 관계다. 달래도 배우가 꿈인데, 남 앞에 나서면 가슴이 쿵쾅거리는 울렁증 때문에 오디션에 떨어지기를 밥 먹듯 한다.

김하늘·권상우는 ‘동갑내기 과외하기’(2003년)에 이어 3년 만에 스크린 속 커플로 등장한다.

영화는 이처럼 지환과 달래가 공유하는 꿈을 빌려 '영화 속 영화'의 재미를 십분 활용한다. 청룽의 탄생을 마치 만화처럼 과장된 무협액션으로 그려낸 도입부는 물론이고, 이후 지환의 출연작을 따라 '우뢰매'류의 특수촬영물, 장애물을 넘어 쫓고 쫓기는 추격액션물을 등장시켜 마치 영화제작 현장을 엿보는 듯한 재미를 준다. 액션배우 지망생을 주인공으로 설정한 감독의 본심이 '영화 만들기에 대한 사랑 고백'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다.

반면 지환과 달래 사이의 밀고 당기는 관계는 기대만큼 차진 맛을 내지 못한다. 달래는 지환의 동급생 영훈(이상우)과 사귀는 중인데, 영훈의 소개로 지환에게도 여자친구가 등장하자 묘한 기분이 들기 시작한다. 삼각관계 같은 지환.영훈.달래 사이의 미묘한 감정은 전반부의 코미디 속에서는 무난하게 표현되지만, 비극적인 사고로 갈등이 본격화될수록 흡입력이 떨어진다.

사실 곰곰이 뜯어보면 이 영화 속 세상에서 웬만한 갈등은 인물 간의 대립으로 발전하기 쉽지 않다. 생활무능력자인 아버지와 단둘이 사는 지환이나, 아버지가 마비 상태로 병석에 누워있는 달래는 그런 가족에게 불평은커녕 구김살도 전혀 없는 선량한 청춘들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달래는 어려서부터 지환의 짓궂은 장난을 언제나 미소로 받아줬다. 영화 속 대사를 빌리면, "늘 착한 척하는"것이 천성이다. 서울에서 보기 드물게 동네 야산이 미개발 상태로 남아있는 달래네 동네풍경처럼, '청춘만화'의 세계는 이처럼 현실에서 보기 힘든 일종의 판타지다. 착한 사람들만 사는 듯한 이 세계에서 지환에게 어떤 일이 닥치든 달래가 발 벗고 나서 돕고, 이런 둘에게 영훈 역시 해코지 한 번 없이 알아서 자리를 피해줄 것은 당연지사다.

'웃음 다음에 눈물'이라는 전개방식은 한때 충무로에 흥행공식처럼 통용됐다. '청춘만화'의 경우는 그 전환이 너무 급격한 데다, 영화 속에 담고 싶은 것이 지나치게 많아서 정서의 변화를 매끄럽게 살리지 못한 듯 보인다. 후반부에 삽입되는 다큐멘터리풍의 화면들도 그 자체로는 신선한 시도지만, 결과적으로 배우가 표현해야 할 감정을 대체해버린 격이 됐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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