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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열정과 냉정 사이 암호화폐 투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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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김동호 기자 중앙일보
김동호 논설위원

김동호 논설위원

그냥 스쳐 지나가려니 했다. 암호화폐 투자 바람 말이다. 그런데 지난해 여름부터 광풍으로 커졌다. 이때부터 경고음도 울려댔다. 국내 최대 암호화폐거래소인 빗썸의 하루 거래액이 코스닥의 규모를 추월했다는 소식, 거래 폭주로 전산이 중단됐다는 얘기가 꼬리를 물었다. 그래도 정부는 그저 강 건너 불 구경하듯 수수방관했다. 그러다 가격이 연초 대비 10배 안팎 폭등하자 비상이 걸렸다. 바다이야기의 트라우마가 떠올랐을테고 법무부는 거래소 폐쇄안을 꺼냈다.

21세기 연금술 같은 암호화폐 캐기, 통화 대체는 난망 #생태계 구축 못하는 코인은 도태 … 광풍 이후 대비해야

정부가 이렇게 무심했던 이유는 암호화폐가 기존 통화를 대체할 수 없다는 상식에서 비롯됐다. 언젠가 거품이 꺼질 것이라 봤을 것이다. 무엇보다 암호화폐가 통화를 대체하기 어려운 이유는 기축통화 시스템 때문이다. 그 중심은 달러를 펑펑 찍어대는 미국이다. 100달러 한장의 제조 비용은 대외비에 부쳐져 있지만 대략 200원으로 추정된다. 결국 미국은 달러를 찍을 때마다 ‘시뇨리지’라 불리는 엄청난 주조차익을 벌어들인다. 이 모든 것을 미국이 챙기는데 기축통화국이라는 지위를 갖고 있어 가능한 일이다.

미국이 이런 화수분을 내놓을 리 있을까. 그럴 가능성은 제로(0)라는 것이 상식이다. 지난 2일 퇴임한 재닛 옐런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비트코인은 투기 자산이며 안정적인 가치 저장 수단이 아니다”고 말했다. 미국의 입장을 대변한 것이고, 전 세계 중앙은행들은 여기에 맞춰 움직이고 있다. 세계 어느 나라도 암호화폐를 통화로 인정하지 않는 이유다.

나아가 세계 각국은 암호화폐에 대한 규제의 고삐를 바짝 조이고 있다. 미국에선 신용카드를 이용한 암호화폐 구매가 제한되고 중국·러시아를 비롯한 상당수 국가가 암호화폐 거래를 금지하고 있다. 일본은 암호화폐에 긍정적인 것 같지만 결제수단으로 허용해주고 있을 뿐이다.

물론 암호화폐의 미래는 아직 예단하기 어렵다. 17세기 튤립파동의 전철을 밟을지, 법정화폐를 위협할 만큼 보편성을 갖출지는 아직 더 많은 시간이 흘러야 알 수 있다. 세계의 중앙은행들도 이런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암호화폐가 법정화폐의 지위를 빼앗지는 못하겠지만 그 역할과 비중이 계속 확장될 가능성은 부정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세계 모든 은행이 규율을 따라야 하는 국제결제은행(BIS)은 중앙은행디지털통화(CBDC) 논의에 나섰다. 한국은행도 “향후 가상통화가 확산될 경우 화폐제도 및 지급결제 시스템에 미치는 영향과 대응방안을 모색해나갈 계획”이라면서 적극적 참여를 공식화했다. 물론 암호화폐를 인정하려는 게 아니다. 초점은 중앙은행 자체의 디지털통화 개발이다.

결국 현시점에서 암호화폐는 사면초가라고 할 만큼 미래를 낙관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그 첫째 정황은 1400종류에 달하는 암호화폐의 대표주자인 비트코인 캐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24시간 채굴해도 최저임금(7530원)도 안 되는 7000원어치도 못 캘만큼 수익성이 낮아지면서다. 급등세를 멈추고 최고가 대비 4분의 1토막 나더니 급기야 암호화폐 투자 실패로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2030세대의 소식이 줄을 잇고 있다. 일부 큰손들은 벌써 현금화를 통해 암호화폐에서 손을 털었다는 소문도 불안을 부추기고 있다.

그렇다고 암호화폐를 21세기판 튤립이나 연금술로 속단할 이유는 없다. 광풍이 잦아들면서 냉정한 투자자들은 감을 잡았다는듯이 암호화폐 시장으로 진격하고 있다. 네이버가 일본에서 암호화폐 사업에 진출하고, 카카오와 게임업체 넥슨이 암호화폐 거래소를 인수하거나 지분을 확보해놓은 이유는 무엇일까. 광풍 너머 엿보이는 가능성 때문이다. 암호화폐 시장도 겨냥하지만 암호화폐를 낳은 블록체인(분산 원장) 기술의 응용과 발전 가능성에 투자하려는 것이다. 그러는 사이 상당수 코인은 도태될 것이다. 열정을 식히고 냉정한 자세로 암호화폐를 봐야 할 때가 왔다.

김동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