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2세 여류작가 「이사벨·라캉」|프랑스 문단서 주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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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한국인 어머니와 프랑스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이사벨·라캉」양(33)이 지난해 가을 발표한 첫 장편 『용의 입맞춤』(원제=Le Baiser du Dragㅇn)이 출간 수개월만에 10만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 대열에 오름으로써 프랑스 문단에서 주목받는 신진작가로 등장했다.
파리의 「JC라테스」 출판사가 펴낸 3백18쪽 짜리의 장편소설 『용의 입맞춤』은 귀족신분으로 자라난 한 소녀가 아버지가 운반하던 왕의 보물을 탈취하고 그녀 자신까지 납치한 가족의 원수격인 도적을 사랑하게 됨으로써 갈등을 겪게되는 것이 줄거리. 10세기 중국 남부지방을 시대적 무대로 했으며 「라캉」양이 대학 때 전공한 동양언어학에서 우러나온 독특한 색채와 제2의 조국에 대한 향수가 깃들어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작품은 또 중세 중국대륙이나 일본에서 나타난 남녀관계, 특히 여자를 성의 노리개 대상으로 삼았던 풍습과 이에 따른 적나라한 성의 묘사를 자주 다루면서도 이를 단순한 에로물로 전락시키지 않고 조화의 한 형태로 이끌어 올림으로써 새로운 스타일의 시도라는 평판을 받고 있다. 「라캉」양은 이 소설로 문제작가를 다루는 TV문학프로그램 「아포스트로프」에도 출연한바 있다.
6·25 때 종군한 르피가로지 기자이자 유명한 르노도상을 수상한 소설가이기도 했던 아버지 「막스·올리비에·라캉」(5년 전 작고)의 글쓰는 분위기에 어린 시절 강하게 영향을 받았다는 그녀는 20대에는 패션모델을 직업으로 삼았을 만큼 뛰어난 미모를 갖고있으며 TV드라마·영화 등에서 주연급 역할을 맡는 현역 배우 겸 가수이기도 하다.
「막스·올리비에·라캉」씨와의 결혼을 한사코 반대했던 완고한 집안을 뛰쳐나와 프랑스로 이주한 어머니 현병유씨(61·이대 영문과 출신)가 두 딸에게 한국말을 가르쳐 주지 않아, 중국어·한국어를 전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유스런 우리말 구사가 어렵다는 「라캉」양은 제2, 제3의 작품테마를 한국에서 찾기 위해 우리말 공부를 계속할 생각.
부모의 뜻을 거역하고 강행한 결혼의 어려움에 대한 기억, 그리고 가족들에 대한 애정과 조국에 대한 향수 같은 감정을 자식들에게까지 물려주지 않겠다는 한 여인의 강인함을 「라캉」양은 어머니에게서 발견하곤 한다고 한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다.
12세 때 한번 가본 한국과 김치 등의 음식 맛을 잊지 못한다는 그녀가 한국을 배경으로 한 본격적인 작품에 선뜻 손대지 못하고 있는 것은 자신의 뿌리를 찾아가는 일이라 그만큼 조심스럽고, 귀한 것에는 감히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용기부족 때문이었다고 동양적인 겸허함을 보이기도 했다. 그녀는 영화제작분야에 종사하는 시나리오작가 「강·마리·가이앙」씨를 인생과 직업의 반려로 여기고있다고 소개한바 있다. 【파리=홍성호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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