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여성과 단둘이 식사하지 않는다"는 펜스 부통령…"내 아버지는 6·25 참전용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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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6일 “올림픽에 북한이 참가하고, 고위 대표단을 파견함으로써 올림픽 계기로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나아가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청와대에서 케르스티 칼유라이드 에스토니아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강조한 말이다.

미국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6월 30일 오전(현지시간) 워싱턴DC의 한국전 참전 기념비를 찾아 미국 부통령 펜스와 함께 이동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미국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6월 30일 오전(현지시간) 워싱턴DC의 한국전 참전 기념비를 찾아 미국 부통령 펜스와 함께 이동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청와대는 그간 “북핵 문제는 결국 북ㆍ미 간에 풀어야 할 문제”라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문 대통령의 이날 발언에는 올림픽 기간 중 북ㆍ미 간 접촉을 기대한다는 의도가 담겨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우리가 기대한 만큼 (북ㆍ미 접촉) 가능성이 높지 않아 보인다”며 “다양한 방식을 여러 통로를 통해 모색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남(左), 펜스(右)

김영남(左), 펜스(右)

부정적인 전망의 배경은 마이크 펜스 부통령의 성향과 관련이 있다. 올림픽에서 북한과 미국의 접촉이 이뤄진다면 주체는 미국 대표단을 이끌고 방한하는 펜스 부통령이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충직한 2인자

펜스 부통령은 원칙주의자다.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미국에서도 ‘정통 보수’를 상징하는 인물로 평가받는다. 지난 2002년 미국의 의회전문지 ‘더 힐’과의 인터뷰에서는 “아내가 아닌 다른 여성과는 절대 단둘이 식사하지 않는다. 아내 없이는 술자리에 참석하지도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의 발언은 미국 대선 과정에서 ‘펜스 법칙(Pence Rule)’으로 불리며 논란을 일으켰다. 공화당에서는 “진정한 기사도”라고 옹호했지만, 민주당 등 진보진영은 “성차별주의자”라고 공격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부통령으로 당선된 뒤로는 늘 트럼프를 뒤에서 지원했다. 유튜브에는 트럼프를 뒤에서 바라보는(eye-banging) 펜스의 모습을 모은 영상이 올라올 정도다. 당연히 펜스 부통령은 일관된 대북 강경론을 펼치는 트럼프와 맥을 함께 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 내내 그를 바라보는 펜스 부통령. [유튜브 영상 캡처]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 내내 그를 바라보는 펜스 부통령. [유튜브 영상 캡처]

그는 5일(현지 시각) 아시아 순방을 앞두고 알래스카 엘먼도프-리처드슨 군기지에서 기자들과 만나 “트럼프 대통령은 항상 대화를 믿는다고 말해 왔다. 하지만 난 어떤 만남을 요청하진 않았다”며 “우리는 무슨 일이 있을지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한 관계자를 만난다고 해도 자신의 메시지는 그동안 공개적으로 말한 내용과 동일하다”며 “북한은 반드시 핵무기 프로그램과 탄도 미사일 야욕을 완전히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의 올림픽 대표단을 이끌고 8일 방한한다. 북한에선 9~11일 명목상 국가수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단장으로 하는 고위급 대표단이 방남한다.

6ㆍ25 참전 용사의 셋째 아들

펜스 부통령이 지난해 4월 서울 용산기지에서 부활절 예배를 한 뒤 미군과 가족들에게 연설을 하고 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자신의 부친이 한국전에 참전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CNN 화면 캡처]

펜스 부통령이 지난해 4월 서울 용산기지에서 부활절 예배를 한 뒤 미군과 가족들에게 연설을 하고 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자신의 부친이 한국전에 참전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CNN 화면 캡처]

펜스 부통령은 지난해 4월 서울 용산 주한미군 기지에서 부활절 예배를 한 뒤 주한미군과 가족 앞에서 10여분 연설했다. 그 자리에서 그는 “내 아버지는 미 45사단 소속으로 한국 전쟁에 참전해 동성무공훈장을 받은 에드워드 펜스 중령”이라며 “아버지도 자신이 오래전 다녀간 이 땅을 방문하는 셋째 아들과 오래전 전쟁터에서 희생의 결과로 자유와 번영을 누리는 대한민국을 보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펜스가 지한파(知韓派)로 불리는 이유다.

그는 지난해 7월 문 대통령의 첫 방미 때 워싱턴DC에 있는 한국전 참전 기념비 참배에 동행했다. 이어 아이젠하워 행정동에서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 토마스 섀넌 국무부 차관 등이 참석한 오찬을 함께하기도 했다.

외교 소식통은 “펜스 부통령이 문 대통령을 대접하기 위해 자신의 전용 오찬장에서 외교안보 라인 핵심 고위 인사들을 모았던 것”이라고 전했다.

펜스는 당시 “한반도의 비핵화라는 공동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제재와 압박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신 것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문 대통령도 “전략적 인내가 끝났다고 트럼프 대통령께서 직접 언급하셨는데, 저도 결과적으로 이것이 실패했다고 생각한다”며 “압도적인 힘의 우위가 있어야 대화와 평화도 가능하고 그런 점에서 한미 연합방위 능력과 한국군의 자체적 방어능력이 강화돼야 한다”고 답했다.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5일(현지시각) 저녁 평창 올림픽 개막식 참석을 위해 방한에 앞서 중간 기착지인 알래스카 엘멘도르프-리처드슨 합동기지에서 기자들에게 방문 목적을 설명하고 있다.[CNN 촬영]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5일(현지시각) 저녁 평창 올림픽 개막식 참석을 위해 방한에 앞서 중간 기착지인 알래스카 엘멘도르프-리처드슨 합동기지에서 기자들에게 방문 목적을 설명하고 있다.[CNN 촬영]

펜스 부통령은 8일 문 대통령과 회담한 뒤 만찬을 함께한다. 문 대통령은 지난 2일 트럼프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펜스 부통령 방한이 한반도 평화 정착에 중요한 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반면 펜스 부통령은 북한에 억류됐다가 풀려난 뒤 숨진 오토 웜비어의 부친인 프레드 웜비어를 올림픽 개막식에 초청했다. 개막식 참석 직전인 9일 오전에는 탈북자들과 함께 경기도 평택 해군 2함대와 천안함 기념관을 방문할 예정이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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