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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팀의 손흥민’ 박종아, 고향 강릉서 골 폭죽 벼른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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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여자아이스하키 대한민국과 스웨덴의 평가전에서 남북단일팀 에이스이자 주장 박종아(오른쪽)가 골을 터트리고 있다. [연합뉴스]

여자아이스하키 대한민국과 스웨덴의 평가전에서 남북단일팀 에이스이자 주장 박종아(오른쪽)가 골을 터트리고 있다. [연합뉴스]

“혼자 다른 레벨에서 뛰는 선수다.”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 22세 캡틴 #세계 5위 스웨덴 상대 빨랫줄 강슛 #지난해 7월 평가전 이어 연속 득점 #동료들 “차원 다른 넘사벽 플레이” #홀로 캐나다 유학, 손흥민과 비슷 #박종아 “경기마다 골 넣겠다” 각오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 선수들은 주장 박종아(22)를 ‘넘사벽(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평가한다. 박종아는 지난 4일 인천 선학국제빙상장에서 열린 세계 5위 스웨덴과의 남북 단일팀 첫 평가전에서 그 진가를 발휘했다. 0-2로 뒤진 1피리어드 18분15초에 박채린의 패스를 받아 드리블 후 그림 같은 슛을 성공시켰다. 빨랫줄처럼 강한 슛이 성공하자 스웨덴 선수들도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날 스웨덴에 1-3으로 패한 단일팀의 유일한 득점이기도 했다.

한국 대표팀은 지난해 7월에도 스웨덴과 두 차례 평가전을 치렀다. 박종아는 한국이 2경기에서 유일한 득점을 기록했다. 당시엔 경기 종료 직전 골대 앞 혼전 상황에서 흘러나온 퍽을 밀어 넣었지만 이번엔 완벽한 자세로 때렸다.

이날 경기를 중계한 오솔길 SBS 해설위원은 “세계 5위 스웨덴을 상대로 골을 넣는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다. 아시아 최강 일본도 스웨덴과 비슷한 수준의 팀과 경기에서 쉽게 골을 넣지 못한다”며 “박종아가 그동안 강팀들을 상대하면서 자신감이 부쩍 늘었다. 한반도를 넘어 이제 아시아의 베스트 포워드로 자리매김한 것 같다”고 치켜세웠다.

골을 기록한 뒤 기뻐하는 박종아. 걸출한 실력을 자랑하는 박종아는 축구대표팀 손흥민에 비견된다. [사진공동취재단]

골을 기록한 뒤 기뻐하는 박종아. 걸출한 실력을 자랑하는 박종아는 축구대표팀 손흥민에 비견된다. [사진공동취재단]

주장으로 경기 내내 선수들과 대화를 나누고 손짓을 하며 팀을 이끄는 모습도 보였다. 특히 경기 시작 전 박종아가 “팀 코리아”를 외치자 동그랗게 모여 선 선수들이 일제히 하키 스틱으로 빙판을 두드리는 장면은 인상적이었다. “한 팀으로 어울리기 힘들 것”이라는 단일팀을 향한 우려를 씻어주기에도 충분했다.

남북 단일팀에서 박종아가 차지하는 위치는 ‘축구 대표팀의 손흥민(26·토트넘)급’이다. 박종아가 그 자리에 서기까지 꿈을 이뤄가는 과정도 손흥민을 닮았다. 강원도 강릉에서 자란 박종아는 취미로 쇼트트랙을 하던 어머니의 권유로 하키 스틱을 잡았다. 어머니는 내성적인 딸이 단체 스포츠를 즐기며 활발해지길 바랐다. 박종아는 아이스하키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급기야 강릉을 떠나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의 훈련장 근처 서울 노원구 혜성여고로 진학한다. 박종아는 15살 어린 나이에 서울에서 혼자 학업과 운동을 병행했다. 외롭고 힘겨웠지만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2학년 때인 2013년에는 아예 학교를 그만두고 홀로 캐나다 유학을 떠났다. 대한아이스하키협회의 유망주 지원 프로젝트에 발탁된 박종아는 캐나다 인터내셔널 하키 아카데미(CIHA)와 온타리오 하키 아카데미(OHA)에서 선진 하키를 경험했다. 실력을 인정받은 그는 2015년 캐나다 서스캐처원대학교에 스카우트됐다. 손흥민이 동북고 1학년이던 2008년 대한축구협회 우수선수로 뽑혀 독일 분데스리가 함부르크에서 유학했고, 이후 그곳에서 성인 무대에 데뷔한 것과 비슷하다.

박종아는 대학 진학을 잠시 미루고 올림픽에 매진하고 있다. 지난해 2월 삿포로 겨울아시안게임 중국전에선 슛아웃 마지막 골을 넣으며 중국을 꺾는 주역이 됐다. 두 달 뒤 강릉 세계선수권대회에선 5경기에 모두 1라인 공격수로 출전해 4골, 6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대회 포인트(골+어시스트) 부문에선 2위에 올랐다.

박종아는 올림픽이 열리는 강릉 출신이다. 지난해 세계선수권 때 부모님은 물론, 일가친척들까지 경기장에 총출동했다. 경기장 곳곳엔 ‘강릉의 딸 박종아’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렸다. 박종아가 퍽을 잡을 때마다 함성이 터져 나왔다. 박종아는 “올림픽에서 매 경기 골을 넣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혔다.

한편 스웨덴과 평가전을 마친 남북 단일팀은 곧바로 강릉으로 이동, 올림픽 선수촌에 입촌했다. 5일에는 평창올림픽에서 조별리그 3경기를 치르는 관동 하키센터에서 첫 훈련을 했다. 선수단 35명 중 전날 경기에 뛰지 않았던 13명(남한 5명, 북한 8명), 그리고 출전 선수 중 훈련을 자원한 임대넬과 황충금이 훈련에 참여해 1시간 20분가량 강도 높은 훈련을 했다.

남북 선수들은 미니게임을 할 때 좋은 플레이가 나오면 서로의 손을 마주쳤고, 아쉬운 플레이가 나오면 함께 탄성을 내질렀다. 세라 머리 감독의 작전지시를 전달받은 김도윤 코치가 “알겠지”라고 말하자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도 보였다. 전날 경기에 출전해 가볍게 몸만 푼 선수들은 링크 밖에서 함께 사진을 찍고, 어깨동무했다.

선수들은 훈련을 마치고 선수촌으로 돌아가 식사를 했다. 선수촌 관계자에 따르면 남북 선수들은 섞여 앉아 대화를 나누며 함께 식사했다. 이후엔 선수촌에 설치된 게임기 앞을 한동안 떠나지 않았다. 한국 선수가 게임을 할 땐 북한 선수들이 웃으며 좋아했다.

‘강릉의 딸’ 박종아는…

박종아. [뉴시스]

박종아. [뉴시스]

출생:1996년 6월 13일(강원도 강릉)
신체:1m60㎝, 61㎏
포지션:포워드
국가대표 데뷔:2010년
경력:2013년 캐나다 인터내셔널 하키 아카데미(CIHA)-2014년 온타리오 하키 아카데미(OHA)
기록:2017 세계선수권대회 디비전2그룹A(4부 리그) 5경기 4골, 6어시스트

강릉=김효경·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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