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문화에도 유머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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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김성호<중앙일보 출판기획위원> TV에 비쳐진 13대 총선거 출마자들의 합동유세는 참 보기에 딱하다. 모두들 입술이 바싹 탔고 얼굴엔 비장한 결의가 서려 있다. 때로 폭력까지 끼어드니 과연 국회의원이 무엇이고 정치가 어떤 것이길래 이렇듯 필사적일까.
선거는 민주정치 최대의 축제라고 하는데 이렇게 살벌한 모습을 띄어야 할까.
한마디로 우리의 정치문화엔 웃음이 없고 유머감각이 결핍돼 있다. 문화를 정신적·물질적·사회적 발전의 총집합체라고 정의한다면 우리의 정치문화는 「정체된 문화」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3O년전 구민주당과 자유당 인사들이 벌인 공방전에서 조금도 나아진게 없다.
유머는 풍자와 해학으로 나타나는데 그 저변에는 따뜻한 인간성과 낙관주의가 깔려있다.
성깔있기로 이름난 일본사람들도 그 성깔때문인지 초창기의 의회토론에선 원색적인 공방을 일삼았다. 어느때 한 의원이 애꾸눈의 동료의원을 비아냥대면서『두 눈으로도 문제해결이 어려운데 한눈으로 무엇을 알겠느냐』고 비꼬니까 이 애꾸눈의원 왈, 『일목요연하다』고 일갈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비꼬는 쪽이나 비꼼을 당하는 쪽 모두 유머를 이해하고 수용하는 자세가 돼있으면 난제도 술술 풀릴 것이다.
정치현실이 너무 각박하니까 우리의 정치문화가 정체될수 밖에 없다고 말할 수도 있겠으나 정치풍토에 유머를 도입, 활용했으면 오늘처렴 상황은 악화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 총선에서 전국구의원으로 발탁된 한 대학교수가 농담으로 『지금까지 정치는 하등동물만이 하는 것으로 여겼는데 이젠 내가 하등동물이 됐다』고 말했다.
정치는 권력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때로는 무자비하다. 권모술수를 서슴지 않을때도 많다. 하등동물을 연상케하는 작태가 수시로 벌어진다. 오죽했으면 『까마귀 싸우는 골에 백로야 가지 마라』고 충고한 선인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삶는 정치를 떠나선 살수 없다. 정치인을 까마귀로, 정치마당을 난장판으로만 치부하고 오부관언 할수만은 없는 일이다.
생각해 보면 정치인이라고 별것 아니다. 우리와 똑같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매일 풍자와 해학과 익살을 즐기며 사는데 그들이라고 이것을 외면할 이유가 없다. 그사람들은 결코 인간성 결핍증 환자거나 비관주의자들이 아니다.
정치는 엄숙한 것이고 정치인는 근엄해야 된다는 고정관념의 뒤에는 권위주의를 추구하려는 음험한 의도가 숨겨져 있음을 우리는 느낀다. 말이 좋아 권위주의지 그것은 곧 독재주의가 아닌가.
요즘 정치풍토가 각박해진 원인을 군사문화의 미만에서 찾으려는 논의도 있다. 명령과 복종이 미덕인 군사문화는 엄숙하고 근엄해야한다. 유머가 끼어들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것이 전반적인 국정을 다루는 정치인의 행동지침이 될수는 없다. 군사문화가 이나라 정치문화의 향상을 가져왔는지를 자문해 보면 안다.
유머를 즐기는 사람은 무자비해 질수 없다. 그와 권모술수는 천리만큼이나 멀다.
이제 사흘후면 사생결단 하듯이 덤벼들었던 후보자들이 절망감에 휩싸일 것이다. 낙선한 인사들은 모두 한마디 하길 바란다.
『그까짓것, 신 포도인데 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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