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한국이 차려 준 '4강 밥상' 엎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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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미국 대표팀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4강 진출이 좌절되자 우울한 표정으로 경기장을 떠나고 있다. [애너하임 로이터=뉴시스]

멕시코의 2루수 호르헤 칸투(위)가 9회 말 수비에서 더블 플레이를 성공시킨 뒤 두 팔을 치켜들며 기뻐하고 있다. [애너하임 로이터=뉴시스]

'야구 종주국' 미국이 스스로 무너졌다. 안방에서 톡톡히 망신을 당했다. 미국 언론의 표현을 빌리면 국제적으로 '떡'이 된(internationally pancaked) 셈이다. 135년의 야구 역사를 앞세워 '메이저리그' '빅리그'를 자랑해온 미국이 2라운드 탈락의 수모를 겪으리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안방에서 열린 대회에서 초대 챔피언을 노렸지만 4강 진출에 실패함으로써 구경꾼으로 전락했다.

1라운드에서 캐나다에 6-8로 질 때만 해도 아직 몸이 덜 풀린 탓으로 돌렸다. 2라운드 첫 경기인 일본과의 대결에선 석연찮은 판정을 앞세워 4-3으로 가까스로 승리하더니 2차전에선 한국에 3-7로 완패했다. 16일(한국시간) 한국이 일본을 2-1로 잡아준 덕에 2위로 4강에 진출할 기회가 있었지만 17일 멕시코에 1-2로 지면서 한국이 차려준 '밥상'을 스스로 걷어차 버리고 말았다.

미국은 메이저리그 챔피언 결정전을 월드시리즈, 우승 팀을 월드 챔피언이라고 부른다. 이 때문에 이번 대회 명칭도 '월드 베이스볼 챔피언십'이 아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으로 정했다.

그러나 최초의 국가 대항전에서 드러난 미국의 전력은 기대 이하였다. 미국 선수들의 컨디션이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다고는 해도 1000만 달러가 넘는 연봉을 받는 스타 플레이어들이라곤 믿기 힘들 정도의 졸전을 펼쳤다. 방망이는 무디기 짝이 없었고, 야수들은 메이저리거답지 않은 실책을 쏟아냈다.

미국의 벅 마르티네스 감독은 안이한 플레이로 일관했다는 비난을 의식한 듯 "4강 진출에 실패해 선수들이 라커룸에서 괴로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 팀엔 스타가 많다. 그들은 득점 기회에서 적시타를 터뜨리는 데 익숙한 선수지만 아직 컨디션이 올라오지 않은 것 같다"고 애써 설명했다.

한편 WBC 조직위원회의 비상식적인 대회 운영과 심판의 석연찮은 판정도 대회 기간 내내 비난을 받았다. WBC 조직위는 껄끄러운 상대인 도미니카공화국과 푸에르토리코.베네수엘라.쿠바 등 중남미 국가들을 모두 2조에 배정하고 만만하게 여겼던 한국과 일본.멕시코를 미국과 한 조에 배정했다. 더구나 4강전에선 다른 조의 국가와 대결을 펼치지 않고 1조 1, 2위 팀과 2조 1, 2위 팀이 다시 맞붙는 이해할 수 없는 대진표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정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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