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글라이더·골프·영어회화 … "군인 아저씨가 가르쳐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0면

학교에서 교사가 학생들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줄 수는 없다. 학교 밖에는 더 넓은 세상이 있다. 부족한 교육 여건을 보완하기 위해 사회 곳곳의 도움을 받는 학교들이 있다. 더욱 다양한 교육 여건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학교가 더 이상 사회와 단절된 '섬'이어서는 안 된다. 넓은 세상과 함께하는 학교 교육을 실천하는 현장을 수시로 발굴해 소개한다.

"부대 안에서 군인 아저씨들에게 태권도를 배우니 색다르고 너무 재미있어요."(박성지양.5학년)

"군복 입은 공군 아저씨가 고무동력기 만드는 법을 알려주니 더 실감나요. 잘 배워서 모형 항공기 대회에 나가고 싶어요."(김종우군.6학년)

16일 오후 2시 부산 김해공항 인근 공군 제5전술공수비행단 영내. 각종 군용기와 장갑차가 줄지어 서 있는 부대 안 곳곳에 어린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퍼졌다. 부대 인근 부산 덕두초등학교 학생 50여 명이 특기.적성교육을 하는 특별활동을 하러 군용 버스를 타고 온 것이다.

군인들의 태권도 훈련 전용 시설인 '은마태권도장'. 30평 남짓한 도장 안은 학교가 마련해준 도복을 입은 남녀 학생 23명의 함성으로 가득 찼다. 오정민(공인 5단) 중사의 구령에 맞춰 발차기를 해보지만 아직 자세는 서툴기만 하다. 그래도 모두 재미있어 하는 표정이다.

오 중사와 함께 태권도 지도에 나선 박기환(공인 3단) 병장은 "군대에 와서 학생들을 지도하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며 "좋아하는 아이들을 보니 군대 생활에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태권도장에서 차로 5분 정도 떨어진 골프연습장에선 조정훈(세미 프로) 병장이 아이들에게 골프채 잡는 법을 알려주고 스윙 자세를 잡아주느라 여념이 없었다. 골프채를 처음 잡아본 아이들은 헛스윙을 하며 웃음을 쏟아냈다.

배철민(6학년)군은 "지난해에는 탁구부 활동을 했는데 올해는 골프를 배워 보기로 했다"며 "군인 아저씨가 형처럼 자상하게 가르쳐줘 좋다"고 말했다.

같은 시각 사병복지회관 2층에 마련된 탁구장. "그게 아니고, 이렇게 팔과 허리를 같이 돌려줘야 해." 중.고교 시절 소년체전과 전국체전에 출전해 단체우승한 경험이 있는 군무원 주정미(여.48)씨의 동작을 따라하며 아이들이 열심히 탁구 라켓을 휘둘렀다. 박유선(5학년)양은 "동네에 탁구장이 없어 못 치는데 부대에서 탁구를 할 수 있다고 해 신청했다"며 "1년 동안 신나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덕두초등학교 학생들의 이런 공군부대 특별활동은 2004년 10월 시작됐다. 그해 9월 부임한 박석태(59) 교장은 부산시이기는 하지만 농촌 지역이어서 학생들이 특기.적성교육을 제대로 받기 어려운 것을 안타까워하다 인근 공군부대로 눈을 돌렸다. 자격증이나 특기가 있는 장병을 특활 강사로 활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공군도 기꺼이 응했다.

첫해 6개 특활부서로 출발했으나 올해는 골프.태권도.탁구.전자키트(라디오 조립).축구.고무동력기.글라이더(모형 비행기).수학경시.영어회화부 등 9개 부서로 늘어났다. 첫해 12명이던 강사진도 올해는 장교를 포함해 24명으로 늘었다. 매주 목요일 6~7교시에 군인들이 학교에 와서 지도하거나 골프.태권도.탁구 등 학교에 시설이 없는 특활부서는 학생들을 군부대로 데려가 가르친다. 4~6학년 학생 120여 명이 참여하고 있다.

박 교장은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교육을 해야 하나 학교의 힘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외부 인력이나 시설을 이용해 교육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노력이 필요한데 공군부대의 특기.적성교육 지원은 좋은 본보기"라고 말했다.

공군부대의 이 같은 교육 지원 프로그램에 대해 학부모도 만족스러워 한다.

최우철(4학년)군의 어머니 박성숙(36)씨는 "학교가 도시 외곽에 있어 다양한 교육을 경험할 기회가 적은데 공군부대의 우수한 인력들이 무료로 이런 기회를 만들어줘 정말 고맙다"며 "더 많은 프로그램이 제공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공군부대 측은 프로그램을 내실 있게 만들기 위해 정훈실에 교육 지원 전담 장교까지 뒀다. 강대희(준장) 제5전술공수비행단 단장은 "지역 초등학교 교육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것이 장병에게도 활력소가 되고 있다"며 "다른 특기가 있는 장병을 발굴해 더 많은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싶다"고 말했다.

부산=김남중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