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책읽기] "바다를 잡아라" 해양강국 꿈 담긴 잠수함 이야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8면

한국형 잠수함 KSX
정의승 지음, 고려원북스
303쪽, 1만5000원

'1941년 11월26일 오전 6시. 일제의 대규모 기동함대는 일본 북방 쿠릴열도 남단의 에토로푸 섬 탄칸만에서 숨막히는 긴장 속에 은밀히 출항했다. 나구모 해군 중장이 지휘한 기동함대는 항공모함 6척, 전함 2척, 중순양함 1척, 구축함 11척, 급유함 8척, 잠수함 30척 등 함정 60여 척과 전투기, 수평폭격기, 급강하 폭격기 등 432기의 항공기로 구성됐다. 이 기동함대가 11일간 3000마일을 항해한 뒤 하와이제도 진주만을 기습할 때까지 오하우 섬의 미 태평양함대사령부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태평양전쟁의 시작이다.

65년이 지난 21세기. 아직도 이런 기동함대를 앞세운 기습이 가능할까. 결론은 '노'다. 인공위성.정찰기.각종 레이더 등 범세계적인 정보망으로 단 한 척의 함정의 움직임도 생생하게 포착해내는 게 정보화된 요즘의 세계다. 그럼에도 외부에 노출되지 않고 적의 턱 밑까지 가서 공격할 수 있는 무기는 뭘까. 바로 잠수함이다.

한국 잠수함의 산 증인이자 자칭 '잠수함 매니어'인 정의승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이사장이 '한국형 잠수함 KSX'를 펴냈다. 정 이사장은 책에서 잠수함이 물과의 신비한 궁합 속에 은밀하면서 자유자재로 행동하는 원리를 역사와 더불어 재미있게 설명하고 있다.

잠수함의 역사는 16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575년부터 1765년까지 190년 동안 최소한 17종의 잠수함 설계도면이 나왔다. 전투에 투입된 최초의 잠수함은 1776년 부쉬넬이 설계.건조한 수류탄 모양의 반잠수정 '터틀'이다. 예일대를 졸업한 부쉬넬이 만든 터틀은 에즈라하사가 조종해 뉴욕 근해에 정박 중인 영국 함대의 지휘함 이글을 공격하려 했다. 이후 독일의 잠수함 U-보트는 제1, 2차 세계대전에서 맹위를 떨쳤으며 영국을 항복 직전까지 몰아붙였다.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한국 해군은 독일 잠수함 기술을 전수받아 209급 잠수함을 건조했다. 209급 잠수함에 가장 놀란 나라는 초강대국 미국이다. 209급 잠수함 이종무함은 1998년 하와이 부근에서 열린 환태평양 해군 합동훈련(RIMPAC)에서 미 해군의 포위망을 뚫고 13척을 격침시키는 경이적인 전과를 올렸다. 이때부터 한국 해군에 대한 미 해군의 대접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정 이사장은 재래식 잠수함인 209급보다 발전된 214급의 AIPS 기술과 관련된 선진국의 개발 경쟁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AIPS는 에너지를 축전지에 저장하거나 수소 등으로 변환해두었다가 엔진을 돌리는 방법이다. 외부 공기가 필요없어서 '공기불요체계'로 불린다. 이 방식을 사용하면 재래식 잠수함이라도 20일 이상 수면에 부상하지 않을 수 있다. KSX 잠수함은 214급에서 한발 더 나아간 개량형이다.

1939년 강릉에서 난 정 이사장은 58년 서울대 문리대에 입학했다가 중퇴한 뒤 이듬해 해군사관학교에 갔다. 그러나 제독의 꿈은 이루지 못하고 중령으로 예편했다. 위관급 때부터 잠수함의 전략적인 위력에 집착한 그는 83년 독일 잠수함 기술을 도입하기 위해 '학산실업'을 차렸다. 결국 209급 잠수함 도입에 성공하게 되고, 각종 선박과 K1 전차 등에 들어가는 독일제 MTU 엔진 도입 사업으로 크게 성공했다. 그렇게 번 돈 150억원을 들여 한국해양전략연구소를 차렸다. 그의 꿈은 잠수함 기술 확보다. KSX를 우리 손으로 만들어 해외물동량의 99%가 오가는 바다를 통제할 수 있을 때 주변 강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에는 '한국형 잠수함 KSX'에 건 그의 평생의 꿈이 담겨 있다.

김민석 군사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