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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대도 카드리더기도…모든 것이 얼었던 평창 모의개회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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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서울 용산구에 사는 직장인 조희진(31)입니다. 한국에서 처음 개최되는 겨울 올림픽인 평창올림픽 개회식을 보고 싶었습니다. 입장권이 너무 비싸 포기하고 있었는데, 운 좋게도 3일에 열린 모의 개회식 입장권을 구했습니다. 일주일 전부터 준비를 철저히 했어요. 개회식이 열리는 강원도 평창군 평창올림픽스타디움에는 지붕이 없어 시베리아 버금가는 추위라고 들었거든요. 거기다 진짜 개회식 때는 나눠준다는 방한 6종 세트도 이날은 주지 않는다고 해서요.

개회식 리허설 티켓 [사진 조희진씨]

개회식 리허설 티켓 [사진 조희진씨]

스스로 잘 준비해야 한다고 다짐했죠. 제가 얼마나 많이 껴입었는지 보실래요? 우선 상의는 기모 티셔츠, 목폴라 니트, 기모 조끼, 후리스 집업 등 네 겹으로 입었습니다. 하의는 기모 내복 2개와 기모 레깅스, 기모 면바지 3개로 무장했습니다. 그 위에 허벅지까지 가릴 수 있는 롱 패딩을 걸쳤습니다.

겨울용 양말 2개, 니트 모자, 넥워머, 장갑 2개, 목도리, 종아리까지 오는 털부츠까지 착용했더니 집에선 땀에 나더라고요. 아직 끝난 게 아닙니다. 허벅지와 발바닥에는 핫팩을 붙였습니다. 손난로용 핫팩도 2개 챙겼고요. 방석용 핫팩도 구매했답니다. 여기에 온몸을 감싸는 두꺼운 담요까지 챙겼어요. 속으로 "이 정도면 시베리아 한복판에서도 살 수 있어"라고 외쳤죠. 저는 영하의 날씨만 되면 외출도 잘 하지 않는 성격이거든요.

평창올림픽 개회식 리허설 갈 때 입은 옷. [사진 조희진씨]

평창올림픽 개회식 리허설 갈 때 입은 옷. [사진 조희진씨]

오후 4시 30분 청량리역에서 진부역으로 가는 경강선 KTX를 탔습니다. 식전행사가 오후 7시 시작될 예정이었거든요. 오후 6시쯤 진부역에 도착했습니다. 바로 역 앞에 개회식장으로 가는 셔틀버스가 있었습니다. 셔틀버스는 일반 고속버스처럼 짐칸에 짐도 실어준답니다. 진부역에서 스타디움까지 20분쯤 걸린다고 했는데, 조금 밀리는 바람에 오후 6시 30분 도착했습니다. 너무 순탄하게 진행돼 '음, 생각보다 편하군' 생각했는데, 고난은 그때부터 시작했습니다.

평창 개회식 리허설가는 셔틀버스 안내판. [사진 조희진씨]

평창 개회식 리허설가는 셔틀버스 안내판. [사진 조희진씨]

사람들을 따라 개회식장 입구에서 줄을 섰습니다. 그런데 대회 관계자만 출입할 수 있는 줄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우르르 다른 입구를 찾아 줄을 섰습니다. 이번엔 미디어만 출입할 수 있는 줄이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오후 7시가 지났고, 점점 몸이 떨렸습니다. 기온을 확인해보니 영하 12도였습니다. 칼바람에 얼굴을 파고들어 따가웠습니다. 재본 건 아니지만 체감 온도는 아마도 영하 20도쯤 됐을 거예요.

평창올림픽 개회식 리허설 입장을 기다리는 줄. [사진 조희진씨]

평창올림픽 개회식 리허설 입장을 기다리는 줄. [사진 조희진씨]

간신히 다른 입구를 찾았습니다. 이번에는 일반인이 들어갈 수 있는 줄이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줄이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너무 답답해 앞으로 걸어가 표를 체크하는 자원봉사자에게 물었죠. 그랬더니 "검색대 등 검색 관련 기계들이 얼어서 작동되지 않는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헉, 결국 소지품 검사는 제대로 하지 않고 입장했습니다.

평창올림픽 개회식 리허설 표검사. [사진 조희진씨]

평창올림픽 개회식 리허설 표검사. [사진 조희진씨]

스타디움에 들어갔더니 벌써 오후 8시. 1시간 30분이나 밖에서 헤맨 셈이네요. 다른 관중에게 물어보니 그쪽은 입장하기까지 1시간 정도 걸렸다고 하네요. 2만 관중이 입장하는데 이 정도였다면, 3만5000여 관중이 오게 되는 개회식 날(9일)에는 훨씬 더 걸리지 않을까요. 문마다 설치한 방풍막 덕분인지, 스타디움 안에 들어가자 칼바람이 줄었어요. 옆에 있던 한 여성은 차가운 플라스틱 좌석에 앉는 게 두려운지 주저하더라고요. 다행히 저는 핫팩 방석을 챙겨간 덕분에 따뜻하게 앉을 수 있었답니다. 핫팩 방석 '강추(강력추천)' 아이템입니다.

모의 개회식이 열린 2월 3일 평창 기온.

모의 개회식이 열린 2월 3일 평창 기온.

점점 배가 고파지더라고요. 외부 음식물 반입을 제한해서 들어갈 수 없었어요. 그래서 매점을 찾았습니다. 호떡 2개(5000원), 어묵 꼬치 2개(4500원)를 샀어요. "비자 카드로 계산할 수 있죠"라고 물었어요, 비자 카드가 평창올림픽 공식 파트너이기 때문에 올림픽 경기장에선 비자카드 아니면 현금으로 계산해야 한다고 들었거든요. 그런데 매점 직원이 "죄송한데, 카드는 안 됩니다. 너무 추워서 카드 리더기가 얼었어요. 작동이 안 됩니다"라고 하더군요. 헉. 또 얼었군요. 현금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입니다. 개회식에 가실 분들, 현금 꼭 챙겨가세요.

평창올림픽 스타디움엔 폴리카보나이트 소재의 방풍막이 처져 있다. 평창=우상조 기자

평창올림픽 스타디움엔 폴리카보나이트 소재의 방풍막이 처져 있다. 평창=우상조 기자

화장실까지는 5분도 안 되는 거리지만 가는 동안 무척 춥습니다. 방풍막이 설치된 문밖에 있거든요. 화장실은 컨테이너로 만들었는데, 한강 공원의 화장실을 떠올리면 됩니다. 그래도 뜨거운 물이 나와 괜찮았습니다. 난방 쉼터는 별로 따뜻하지 않았어요. 사람들이 자주 들락날락하면서 문이 대부분 열려있거든요. 당연히 열기도 빠져나갔고요. 우산 모양인 파티오 히터는 10여명이 둘러싸야 따뜻해요.

오후 9시쯤 되자 추위에 떨다 지친 사람들이 빠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운동화만 신고 온 어떤 남성분은 "발가락이 떨어진 거 같다"면서 후다닥 나갔어요. 저는 양말 2개에 핫팩까지 붙였지만, 발이 시렸습니다. 장갑을 두 겹으로 낀 손도 시렸고요. 저는 모의 개회식이 끝난 오후 9시 30분까지 앉아 있었으니 그래도 선방했네요. 사람들이 중간부터 나간 '덕분'인지, 행사가 끝나고 스타디움을 빠져나갈 때는 그다지 붐비지 않았습니다. 15분 정도 걸어 나와 바로 셔틀버스를 타고 진부역에 도착하니 오후 10시 15분쯤이었어요. 오후 10시 34분 청량리행 KTX를 탔고, 자정 가까이(오후 11시 50분) 되어 서울에 도착했습니다.

그럼 모의 개회식 당일치기 여행을 항목별로 10점 만점 기준으로 평가해 보겠습니다.

평창올림픽 개회식 리허설 가기 전 준비한 방한물품 [사진 조희진씨]

평창올림픽 개회식 리허설 가기 전 준비한 방한물품 [사진 조희진씨]

1. 추위(6점)=춥긴 추워요. 그래도 견딜만해요. 다만 저처럼 차려입어야 그렇다는 얘깁니다. 손끝, 발끝은 핫팩 붙여도 춥다. 감수합시다. 핫팩을 붙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는 셔틀버스 안에 있을 때뿐. 셔틀버스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칼바람이 덮쳐와요.

평창 개회식 리허설에 가는 셔틀버스를 탄 관객들. [사진 조희진씨]

평창 개회식 리허설에 가는 셔틀버스를 탄 관객들. [사진 조희진씨]

2. 수송(8점)=KTX역에서 개회식이 열리는 올림픽스타디움까지 바로 연결됩니다. 안내판도 잘 되어 있고요. 버스 짐칸에 짐도 실어줘서 편하게 이동할 수 있죠. 그런데 진짜 개회식 때 관중이 더 늘어나면 이동 시간이 길어질 수 있으니 만점은 못 드리겠어요.

3. 개회식(6점)=개회식 내용은 비공개로 약속해 밝힐 수는 없어요. 그래도 '즐기자'고 마음먹고 온다면 어깨춤을 추면서 재미있게 관람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무엇이든지 마음가짐이 중요하죠. 하하. 평창올림픽이 꼭 성공하기를 기원할게요.

정리=박소영 기자 psy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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