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페 '김프' 실종됐다…국내 비트코인 가격 해외와 역전

중앙일보

입력

국내 암호화폐 가격이 해외보다 더 비싼 '김치 프리미엄'(김프)이 2일 오전 한때 사라졌다. '역(逆)프'다.

2일 오전 국내 비트코인 가격 해외보다 낮아져 #1만달러 무너진 뒤 해외 시세도 하락세 #암호화폐 실명제·美 테더 조사 등 글로벌 규제 여파

암호화폐 가격 정보 사이트인 '루카7'에 따르면 2일 오전 9시 40분 기준 국내 비트코인 가격은 해외보다 0.56% 낮게 거래되고 있다. 원화로 946만2215원이지만 달러 거래가를 원화로 환산하면 951만5166원이다. 이더리움 역시 원화로 105만3300원이지만, 달러 거래가를 원화로 환산하면 106만564원이다. 원화 거래가가 0.68% 더 낮다.

한때 김치 프리미엄은 40% 이상 붙기도 했다. 보통 외국에서 암호화폐를 거래하고 국내로 들여오는 비용 등을 감안하면 김치 프리미엄은 10% 정도가 정상이라고 본다. 그동안 김치 프리미엄이 높아 한국 시장이 지나치게 달궈졌다는 분석이 많았는데 이제는 더 빨리 냉각된다는 쪽으로 시장의 흐름이 변하고 있다.

2일 오전 9시 40분 기준 마이너스 기록한 '김치 프리미엄'. 출처: luka7.net

2일 오전 9시 40분 기준 마이너스 기록한 '김치 프리미엄'. 출처: luka7.net

김프가 빠지는 것은 투자자에게 일종의 조정 신호로 읽힌다. 한 비트코인 투자자는 "김프가 커지면 상승장, 김프가 빠지면 하락장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여태껏 암호화폐 투자자가 한국으로 몰리면서 김프는 지난해 가을 30~40%까지 높아졌다.

중국발 규제 등으로 국내 투기 수요가 빠져나간 여파에 10%대로 프리미엄이 빠지긴 했지만 '대장 화폐' 격인 비트코인 국내 가격이 해외보다 낮아진 것은 이례적이다.

김프는 각국 글로벌 규제와 맞물려 부풀었다가 빠지길 반복했다. 규제 강도가 글로벌 수요·공급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번에 김프가 꺼진 것은 지난달 30일 국내 은행권에서 시작된 암호화폐 실명제와 연관이 깊다. 기존에 가상계좌를 쓰던 암호화폐 투자자는 실명으로 바꾸면 되기 때문에 큰 영향을 받지 않지만, 신규 유입이 안 될 것이라는 전망이 확산한 여파다.

기업은행 등 암호화폐 거래소와 거래하는 은행이 당분간 암호화폐 투자용 신규 계좌를 발급하지 않기로 하면서다. 실제 한국블록체인협회는 "일부 거래소는 실명확인 시스템을 수용하려고 했지만, 은행권 거부로 강제 퇴출당할 위기다. 기존 거래소와의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은행권에 신규 계좌 발급을 요구하기도 했다.

국내뿐 아니라 글로벌 시세도 전반적으로 하락세다. 미국 암호화폐 정보사이트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같은 시각 비트코인은 전날 같은 시각보다 12% 내린 8937달러에서 거래 중이다. 이더리움도 11% 하락한 996달러를 기록했다. 투자자에게 심리적 방어선과 같았던 1만 달러가 무너진 뒤 내림세가 이어지고 있다.

역시 글로벌 규제와 무관치 않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는 지난해 12월 홍콩 암호화폐 거래소인 비트피넥스와, 암호화폐 스타트업 테더 관계자에 소환장을 보내고 조사를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테더는 암호화폐를 살 수 있는 일종의 상품권 역할을 해 왔다. CFTC는 테더가 달러 가치에 연동 가능한지, 또 대량 발행으로 가격 조작이 있었는지 등을 조사 중이다.

페이스북이 암호화폐 광고를 제한한 것도 암호화폐에 대한 투자 심리를 냉각시켰다. 인도 정부가 암호화폐를 통한 돈세탁이나 불법 결제를 막기 위해 모든 조치를 강구하겠다고 선언한 것도 악재가 됐다.

지난달 27일 일본 대형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체크는 "해킹으로 580억엔(약 5700억원)어치의 뉴 이코노미 무브먼트(NEM·암호화폐 일종)를 도난당했다"고 밝히면서 국내 암호화폐 투자자도 보안에 대한 우려를 표출하고 있다. 다만 일부 투자자는 "투기 큰 손이 이탈하고 김프가 빠지면서 암호화폐가 진정한 가치를 평가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의견도 내놓았다.

이새누리 기자 newworl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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