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신성식의 요람에서 무덤까지

20인실, 18인실이 불러온 밀양의 사모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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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신성식 기자 중앙일보 복지전문기자
신성식 복지전문기자·논설위원

신성식 복지전문기자·논설위원

인구 10만명이 약간 넘는 소도시 밀양에 어머니를 향한 절규가 산과 들을 적시고 있다. 세종병원 사망자 39명 중 80대 이상 초고령 노인이 27명, 할머니가 25명이다. 강추위에 발인 행렬에 선 40~60대 초로의 자녀들의 절규가 애절한 사모곡처럼 들린다.

밀양은 전국 시 중에서 네 번째로 고령화된 도시다. 중위연령(일렬로 세웠을 때 정 가운데 나이)이 50.7세다(2015 인구센서스). 지난해 말 기준으로 2만 6719명의 노인이 산다. 주민 넷 중 한 명꼴로 노인이다. 세종병원은 노인병원과 다름없다. 환자의 70%가 70대 이상이다. 여기뿐 아니라 다른 시·군의 병원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한 지인은 “백내장 때문에 밀양의 어머니를 모시고 시내 안과에 갔는데 노인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고 전했다.

정부 당국도 세종병원에 왜 그리 노인환자가 많은지 의아해한다. 고령화 속도가 우리 인식을 훨씬 앞서가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고령사회에서는 치료(Cure) 못지않게 케어(Care)가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는 치료에 쏠려 있다. 여기에 자원을 쏟는다. 문재인 케어가 대표적이다. 2022년까지 31조원을 쓴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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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안전은 케어의 핵심이다. 병원 낙상이나 감염은 적을수록 좋다. 화재는 말할 것도 없다. 한국의 치료기술은 세계 최고다. 한 꺼풀 벗기면 세계 최저에 가까운 모습이 드러난다. 세종병원 301호실, 601호실은 그 상징이다. 세상에 20인실, 18인실이라니. 군 병원 말고 이런 데가 있다니 말이 안 나온다. 스프링클러 하나 없는 노인병원이라니. 이런 상황에서 감염 관리, 사생활 보호 등 환자 안전을 논할 가치가 없다. 이런 걸 두고 세계 최고를 내세우면 새빨간 거짓말과 다름없다.

안전예방은 폐렴 치료와 달라서 눈에 보이지 않는다. 모양도 나지 않는다. 세상에 ‘공짜 안전’은 없다. 병원 한 곳에 스프링클러 설치하려면 5000만원 이상 든다고 한다. 병원에 당장 갖추라고 하면 가능하지 않다. 마중물을 넣고 펌프질을 해야 한다. 예산이나 건강보험 재정이든 세금 감면이든 뭔가 필요하다.

무상 복지보다 안전 투자가, 문재인 케어보다도 안전 투자가 더 값지다. 이런 발상의 전환이 없으면, 이번에도 일부 보완으로 마무리하면 ‘밀양의 사모곡’이 끝없이 이어질 것이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