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뭐지? 파란색 영수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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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최근 음식점과 택시 등 다양한 곳에서 늘고 있는 파란색 영수증.

최근 음식점과 택시 등 다양한 곳에서 늘고 있는 파란색 영수증.

가계부에 종이 영수증을 모아두는 직장인 김희은(35) 씨는 요즘 검은색 대신 파란색 글씨로 된 영수증(사진)을 받는 일이 부쩍 늘었다. 식당이나 카페에서 파란색 영수증을 주로 주더니 며칠 전엔 택시에서도 파란색 글씨 영수증을 받았다. 김씨뿐 아니라 최근 인터넷 커뮤니티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도 ‘파란 영수증’은 화제다. “나도 드디어 받아본다”며 인증샷을 올리거나 이유를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다.

영수증 용지엔 잉크 대신 염료 사용 #세계 생산 1위 중국업체 영업정지 #검은 염료 부족해 파란색 대체 수입 #사태 계속되면 블루 로또 나올 수도

우리가 흔히 받는 영수증 용지는 ‘감열지’로 불린다. 종이 자체에 염료가 들어있어 열을 가하면 그 부분에 글자가 뜨는 방식이라 프린터처럼 잉크를 넣을 필요가 없다. 국내에선 한솔제지 등 제지회사가 염료를 수입해 감열지를 만들고, 이를 크고 작은 가공업체에 공급한다. 가공을 거친 감열지는 단말기 회사나 일반 가게 등에 납품된다. 지금까지 감열지에 쓰이는 염료는 대부분 검은색이었다. 흰색 종이에 입혔을 때 글자가 가장 또렷하게 나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검은색 염료가 귀해졌다.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그렇다. 검은색 염료의 80% 이상을 중국에서 만드는데 그 가운데 45%를 담당하는 1위 업체가 지난해 가을, 중국 정부로부터 영업 정지를 당했다. 염료를 만들면서 유해 물질을 배출했다는 이유에서다. 염료 생산량이 턱없이 부족해지면서 하는 수 없이 일본 등 다른 나라에서도 들여올 수 있는 파란색 염료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원래 파란색 염료는 힘을 가하면 포개진 종이에 글자가 쓰이는 ‘감압지’에 많이 쓰였다. 신용카드로 계산한 뒤 서명해서 가게와 나눠 가진 그 종이를 떠올리면 된다. 사용이 줄면서 지금은 생산하는 곳이 많지 않다.

경기도 파주에 위치한 감열지 가공업체 세광전산에선 지난 11월부터 파란색 염료를 입힌 감열지를 공급받고 있다.

이 회사 여동철 실장은 “파란색 염료는 많이 쓰지 않다 보니 만드는 곳도 적고 가격이 비쌌는데, 지금은 검은색 염료 가격이 더 오른 데다 구하기도 힘들게 됐다”며 “염료 값이 용지 값까지 올려 회사 수익에 영향을 미칠 정도”라고 말했다.

일반 가게에 단말기와 함께 감열지를 공급하는 업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한 업체 관계자는 “검은 색은 아예 공급 못 하고 있고, 파란색 용지만 겨우 구해서 주고 있다”고 말했다. 영수증뿐 아니라 다른 종이에도 파란색 글씨가 등장할 수도 있다. 한솔제지 관계자는 “감열지는 바코드나 항공기와 KTX 티켓, 로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쓰이고 있다”며 “수급 차질이 오래 간다면 이런 종류까지 파란색 글씨로 바뀔 수 있다”고 설명했다.

파란색 영수증이 친환경 용지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글자색과 친환경 여부는 상관없다. 감열지의 친환경 여부는 가공 과정에서 ‘비스페놀A’(BPA)를 비롯한 화학물질을 사용하느냐 여부에 달린 것이기 때문이다. 친환경 감열지의 경우 영수증에 대부분 친환경 여부가 표기돼 있기 때문에 구별할 수 있다.

파란색 영수증 현상은 언제까지 계속될까. 몇달 안엔 검은색 염료 부족 현상이 해소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솔제지 관계자는 “염료업체의 영업 정지가 중국 중앙정부 차원의 일이라 언제쯤 공급 부족이 해소될 지 가늠하긴 어렵지만 오는 6월 안엔 해결되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다. 다만 이미 염료 가격이 크게 올랐고 중국 환경규제가 심해진 상황이라 영업 정지가 풀린다 해도 가격이 이전 수준만큼 내려가진 않을 것으로 가공업체들은 전망한다.

강나현 기자 Kang.na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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