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법·무법이 횡행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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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각 정당의 공천이 대충 끝나고 선거일도 불과 20여일 앞으로 다가옴에 따라 벌써 전국적으로 선거초반전이 치열하다.
원래 선거 운동은 선거일 공고가 있은 후 후보들이 해당 선거관리 위원회에 후보 등록을 마친 후부터 할 수 있게 돼 있는데도 이런 법조문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지경으로 사실상의 선거운동이 열기를 더해가고 있다. 거리마다 플래카드가 내걸리고 골목까지 담벽은 후보들의 포스터로 뒤덮이고 있다.
물품 공세 등으로 나타나는 금력선거, 타락선거의 양상도 일찍부터 고개를 내미는 분위기다. 서울· 지방이나 여야 할 것 없이 라이터, 지갑, 혁대들 등을 나눠주고 있고 선거바람 때문에 관광버스 전세가 어렵다는 얘기도 들린다. 과거 몇 억대로 운위되던 선거비용도 이번에는 10억, 20억이라는 말이 예사로 나오고 있다.
종전 같은 1구 2인제가 아니라 당선 아니면 낙선인 소선거구제인데다 특히 이번 경우 여야 대결에 더해 야당간의 제1야당 경쟁이란 요소도 있고 경쟁률도 유례없이 높아 이래저래 선거양상이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되긴 했었다.
그리고 선거에 있어 치열한 경쟁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라는 점도 이해가 되긴 한다.
그러나 선거운동이 무한 투쟁일수는 없으며, 선거운동을 규정한 현행 선거법 조정이 아무리 비현실적이라 하더라도 깡그리 무시해서는 곤란하다. 현행 선거법은 선거 운동 외 방법을 선관위가 허용하는 한도 이내의 합동연설회, 현수막, 선거벽보, 선거공보 등 몇 가지로 한정해 놓고 이외의 모든 선거운동을 금지하고 있다. 이것은 선거운동의 현실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비현실적인 규정이 아닐 수 없고, 1구 2인제가 채택된 유신시절 선거에서도 이 규정이 제대로 지켜진 적은 없었다.
따라서 선거법의 이런 비현실적 요소는 13대에 들어가 차분히 개정을 논의할 사항이지만 그렇다고 모든 후보들이 전혀 법을 무시하고, 무시해 봐야 잔소리하는 사람 하나 없는 상황이 돼서는 안될 일이다.
후보들은 현재 하고있는 사전 선거운동을 대개 정당행사·당원교육·사무실 개소식 따위의 명목으로 호도하고 있지만 사실상 탈법적 선거운동으로 보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우려되는 것은 선거 양상이 자금경쟁화 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지난해 대통령 선거전은 우리나라 선거운동의 양태를 매머드화 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 같다. 엄청난 홍보물의 살포, 대형행사는 물론 확성기·피킷·운동원의 복장에 이르기까지 대형·대량화, 고급화·감각화 되었다. 과거 한장씩 붙이던 후보 포스터를 수십장씩 수백장씩 도배하듯 붙이는 것이 보통처럼 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무엇 하나 돈이 안 들어가는게 없고, 그런 방식의 운동을 하자면 엄청난 자금 투입이 불가피해진다.
이런 대통령 선거전의 축소판이 전국 2백24개 선거구에서 벌어지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될 때 경제에 미칠 영향도 영향이려니와 정치·사회적 악영향이 심각해질 것이다. 국회의원은 졸부가 아니면 엄두를 못 내게 된다고 해서도 말이 안되고, 그런 대량출혈을 하고 의사당에 들어가는 의원의 정치행태가 과연 어떻겠느냐는 우려도 안할 수 없는 것이다.
또 선거 후유증도 염려스럽다. 선거 경쟁이 지나치게 과열되고 탈법·무법이 성행하게 되면 대량 선거 소송 등의 뒤탈이 반드시 생기고 자칫 선거후 정국 불안까지 올는지 모른다.
여야 각 정당은 물론 모든 출마자들은 이런 여러 가지 점을 고려해 상식에 입각한, 도를 넘지 않는 선거운동을 해야 한다. 유권자들도 이번에는 마음먹고 돈 많이 쓰는 후보를 과감히 배제하는 지혜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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