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성적 공개 판결 파장] "석차공개 하나 안하나" 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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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이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대학수학능력시험 총점 기준 누가성적분포표와 개인별 석차를 공개하라고 판결함에 따라 큰 파장이 예상된다.

지금까지는 성적 위주의 '한줄 세우기' 입시를 지양하고 대학 서열화를 막기 위해 수험생의 총점 석차를 공개할 수 없다는 원칙이 우선시됐다.

그러나 이번 판결은 정보가 공개되지 않아 대학 지원 때 큰 불편을 겪고 있다는 수험생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에 대해 교육인적자원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2일 총점 기준 석차 비공개 방침을 고수하며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이로써 최종 판결 때까지 석차 공개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계속될 전망이다.

특히 오는 11월 실시되는 2004학년도 수능에서 석차 공개가 이뤄질 지가 불투명해 수험생들이 혼선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수험생들과 학부모들은 석차 미공개에 따른 불만과 함께 올 수능 전에 최종 결정이 내려져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서울 D학원에서 재수 중인 李모(20)씨는 지난해 대입에서 수능 총점 기준 석차를 몰라 고배를 마셨다. 李씨가 지원했던 Y대는 1단계 전형에서 수능 5개 영역 총점을 전체 전형 점수의 54%나 반영했다.

李씨는 "내 점수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지원하느라 애를 먹었다"며 "석차 비공개는 수험생들에게 눈을 가리고 걸어가라고 요구하는 식"이라고 말했다.

현행 대학입시에서는 전체 모집인원의 61%에 달하는 정시모집 전형에서 각 대학들이 일괄합산 전형을 실시하고 있다. 수능 득점에 따라 지원 대학 합격 여부가 결정되는 구조인 셈이다.

그런데도 총점 석차가 공개되지 않아 수험생들이 자신의 위치를 알 수 없고 결국 자기 수준에 맞는 대학을 선택하는데 애를 먹고 있다는 게 불만의 요지다.

수험생들은 이 때문에 사설 평가기관이나 입시기관에 총점 석차 관련 정보를 의존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날 서울행정법원으로부터 승소 판결을 받은 金모(19.S대1)양도 정확한 총점 기준 석차가 없어 사설 입시기관의 점수대별 대학 배치표 등에 의존해야 했다.

金양은 "어떤 친구들은 초당 1천원이 넘는 돈을 써가며 사설 기관의 자동응답전화(ARS)를 이용하기도 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2004학년도의 경우에도 전체 2백개 대학 중 수능 총점을 기준으로 전형하는 대학이 1백31개나 된다. 이 때문에 교육부가 수능 석차 비공개 원칙을 유지할 경우 수험생들의 속앓이는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교육 관련 시민단체인 '함께 하는 교육시민모임'김정명신 공동회장은 "서열화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학생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은 문제"라며 "교육수요자가 겪는 불편과 불이익에 대해 법원이 교육부에 일침을 가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고교 교사들은 진학지도에 총점 석차의 필요성이 거의 없다며 미공개 원칙이 유지되는 게 교육적으로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또 2005학년도 입시부터는 수험생마다 응시 영역과 과목이 다른 선택형 수능으로 바뀌기 때문에 총점 기준 석차 산출이 불가능하고 의미도 없다고 한다.

서울고 윤웅섭 교장은 "다양한 전형방법이 도입된 2002학년도 입시 이후에는 필요성이 거의 없어졌다"고 말했다.

김남중.강홍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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