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공화국 비리 수사의 시금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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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온 나라를 뒤흔들듯 떠들썩했던 전경환씨와 새마을운동 중앙본부에 대한 검찰수사가 마무리 됐다.
31일 전경환씨의 수감과 함께 검찰이 그 동안의 수사 결과를 발표함으로써 10일간의 공개 수사가 끝난 셈이다.
검찰의 이번 사건 수사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주목을 받아 왔다.
그 동안 성역으로 여겨지던 새마을운동본부나 전경환씨의 비리에 검찰이 칼을 뽑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우선 온 국민의 관심을 모았다. 물론 수사 결과가 어떻게 매듭지어질 것 인가도 주시의 대상이었다.
또 제 5공화국과 제 6공화국의 검찰권 행사 차이를 발견하고자 하는 기대도 컸었다. 지금까지 부천서 성 고문 사건·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 등 각종시국사건의 처리 과정에서 만신창이가 된 검찰의 명예회복을 위한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번 사건의 처리나 수사 과정이 앞으로 계속될지도 모를 5공화국의 각종 대규모 비위사건 수사의 시금석이란 점이었다. 이미 야당가에서는 이번 사건 외에 여러 가지 시국사건의 재수사와 당시 고위층 주변 관련 부조리를 수사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고 있는 데다 총선 과정에서 이 같은 주장은 더욱 드세어질 것이 분명하므로 언제, 어느 사건을 검찰이 수사해야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검찰이 이번 사건에서 보여준 가장 큰 특징은 독자적 수사였다는 점이다. 그러나 수사 시기나 수사 결과는 결코 국민들을 만족시켰다고 보기 힘들다. 그 동안 대형사건의 수사에서 검찰이 외풍에 시달리고 향일성 수사를 해왔기 때문에 독자적 판단으로 수사했다는 것 자체도 의미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검찰내부의 문제고 국민들은 수사 결과가 얼마나 사실에 가깝게, 국민들의 법 감정에 맞게 나타났는가를 갖고 평가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번 사건 수사는 성격상 「전경환 구속」에 최대의 목표를 두고 이를 뒷받침하는 데만 전념, 전씨나 새마을운동 중앙본부의 비리를 파헤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는 수사착수 시기의 실기와 짧은 수사 기간이 가장 큰 원이 됐다.
검찰은 전경환씨가 18일 일본으로 몰래 출국한 후 19일 전두환 전 대통령이 정부측에 수사를 요청하고서야 21일 부랴부랴 공개 수사를 시작했다.
검찰 관계자는 공개수사 1주일 전부터 각종 정보 수집 등 내사를 해왔다며 전씨의 출국이 공개 수사를 1주일 앞당겼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것처럼 전씨는 이미 2개월 전부터 위기감을 느껴 가짜 장부를 만들고 비밀장부를 빼돌리는 등 검찰 수사에 대비해 왔다고 볼 수 있다.
이기간은 결정적 증거를 모두 없애는데 충분했고 자기들끼리 입을 맞춰 각본을 짤 수 있는 여유도 갖게 했다. 이 때문에 수사 팀이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고 기껏 장부상에 나타난 공금 횡령이 주된 범죄 사실이 될 수밖에 없었다.
전씨 사건 수사에서 공금을 빼돌린 부분도 중요하지만 오히려 핵심은 압력·청탁·이권 개입·재산 해외도피 부분에 있었다. 80년 이후 새마을운동 중앙본부가 마치 전씨의 사설 단체처럼 인식된 이상 전씨의 새마을 성금·기금·새마을신문 공금 횡령은 구속 요건에 필요한 「상식」일 뿐이다.
정작 그보다 국민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전씨가 어떤 이권에 어떻게 개입해 어느 정도의 부정을 저질렀느냐 하는 것인데 검찰이 밝힌 것은 겨우 2건 뿐 이다.
하나는 코스모스백화점 정규성 회장(80)으로부터 하얏트호텔 경영권 분쟁 해결 명목으로 2억원을 받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인천 길 병원으로부터 인하대 의대 부속병원 허가를 내주지 말아 달라는 청탁과 함께 4천 7백만원을 받았다는 것이다.
과연 전씨가 은행 등 금융기관에 부정 대출토록 압력을 가했다는 「소문」과 관계 공무원에게 부당한 압력을 가해 「만능 해결사」 역할을 해왔다는 것은 모두 터무니없는 얘기일까.
청탁이나 압력은 주고 받은 약측이 모두 부인하기 일쑤여서 수사 시기를 놓치면 안되다는 것이 수사의 ABC라는 점에서 검찰의 때늦은 수사 착수는 부실한 결과를 자초하게 됐다.
또 10일이란 짧은 수사 기간으로는 7년 동안 전국에 걸쳐 뿌리깊게 번진 비리를 캐내려는 것이 불가능했다. 검찰은 수사 착수 때 이미 월말까지 전씨의 구속으로 마무리한다는 시간표를 짜놓고 있었다. 수사는 제한된 시간에 한다는 것이 대원칙이긴 하지만 실체적 진실 발견이 더욱 중요하다는 점에서 수사 기간이 너무 짧았다.
수사 팀의 간부가 『사건의 전모를 파헤치려면 적어도 2개월 이상 수사해야 한다』고 말할 정도고 보면 검찰의 이번 수사는 「발등의 불끄기」 식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사건 수사에서 구속된 문청·정장희·황흥식씨 등의 장기구금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복잡하고 방만한 내용 때문에 이들의 신병 확보가 불가피한 현실이긴 하지만 합법수사를 강조하는 새 시대에선 이의 개선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검찰이 『이들은 자진 출두한 참고인일 뿐 피의자 신분이 아니다』고 궁색한 변명을 하는 것은 경찰이란 하급 수사 기관을 지휘·감독하는 최고 수사 기관으로서의 자세는 아닌 것이다.
엄격한 의미로 구속은 본격 수사를 위한 신병 확보에 불과하다. 앞으로 전씨의 기소까지 검찰은 20일 동안 수사를 계속할 수 있다.
그러나 검찰이 범양상선 사건에서처럼 일단 신병 구속 후 공소 유지를 위한 보강 수사에만 매달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공소 유지를 위한 수사는 별도의 팀을 구성하고 현재의 수사 팀은 계속 국민들이 궁금해하는 전씨의 새로운 범죄 사실을 밝히는데 주력해야할 것이다. <권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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