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란의 아리아만 선택" 조수미 신들린 무대 예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최근 국내 무대에서 크로스오버에 치중했던 소프라노 조수미(40)씨가 오랜만에 클래식 무대에 선다. 팝송이나 뮤지컬 넘버에 대중 취향의 오페라 아리아 몇곡을 곁들이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오페라 아리아로 승부를 거는 본격 클래식 무대다.

도니제티의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중 3막 6장에 나오는 '나를 부르는 부드러운 속삭임'을 비롯, 벨리니의 '청교도''몽유병의 여인', 토마의'햄릿'중 여주인공이 부르는 '광란의 아리아'4곡만으로 프로그램을 꾸민다. 말하자면 '테마가 있는 오페라 아리아의 밤'이다.

고난도의 기교를 요하는 데다 조씨가 부르는 네 곡의 아리아만 해도 50분이나 걸린다. 여기에 서곡과 합창을 곁들이고 앙코르곡도 푸짐하게 준비했다는 게 주최 측의 귀띔이다.

'루치아'중 광란의 장면은 영화'제5원소'에 삽입돼 더욱 유명해졌다. 정신 잃은 사람이 부르는 노래이기에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의 화려한 테크닉과 넓은 음역, 탁월한 가창력을 요구한다. 정상인이 소화해내기 힘든 긴 호흡에다 고음(高音)과 트릴의 연속이다. 19세기 오페라의 벨칸토 창법을 '광란의 아리아'만큼 잘 보여주는 것도 없다.

권력 투쟁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사랑은 고뇌와 광기.죽음을 낳는다. 남성의 잔인 무도함 때문에 사랑마저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는 여성이 다다르는 종착역은 광기일 뿐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다른 사람과 강제 결혼을 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여주인공들은 정신착란의 세계에서나마 참된 사랑을 맛본다.'광란의 아리아'는 단순한 광기의 표출이 아니다. 권력과 전쟁으로 갈기갈기 분열된 세계에 대한 처절한 반란이자 그너머 휴머니즘이 지배하는 유토피아에 대한 동경이다.

비련의 여주인공 루치아는 정략 결혼의 희생자다. 그녀가 사랑하는 에드가르도는 오빠 엔리코가 이끄는 왕당파가 복수의 칼을 갈고 있는 반대파의 우두머리다.

결혼식날 밤 남편 아르투로를 칼로 찔러 죽인 후 발각되자 "남편은 어디에 있어요?"라고 중얼거리면서 에드가르도와 결혼식을 올리는 환상에 사로잡힌다. '광란의 아리아'에 등장하는 플루트 독주는 루치아가 환청으로 듣는 에드가르도의 목소리다.

'루치아'는 소프라노 조수미씨가 최근 모차르트의'마술피리'(밤의 여왕 역)만큼이나 자주 서고 있는 오페라다. 올 초에도 드니 오페라하우스, 로마 오페라 등에서 루치아 역을 맡았다.

오페라 여주인공이 부르는 '광란의 아리아'는 이 밖에 벨리니의'해적', 도니제티의'안나 볼레나'에서도 등장한다.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존 서덜랜드.에디타 그루베로바 등 세계적인 성악가들이 '광란의 장면'만을 엮어 음반을 냈지만 독창회로 꾸민 경우는 매우 드물다.

◆공연메모=10월 5일 오후 7시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출연 체코 야나체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서울필하모닉 오페라 합창단, 지휘 파올로 올미. 주최 측은 공연실황을 DVD로 제작할 계획이라며 관객들에게 가능한 한 정장을 착용하도록 권한다.

9월 25일 청주, 27일 춘천, 30일 부산, 10월 2일 대전에서는 한국가곡.오페라 아리아.뮤지컬 넘버 등으로 꾸민 가벼운 레퍼토리로 순회 독창회를 한다. 청주.춘천은 피아노 반주. 02-3444-0482.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