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주의소곤소곤연예가] 박경림 "반듯한 글씨로 친구 사로잡았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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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스타를 만나 인터뷰를 할 때 가장 힘든 것은 바로 취재노트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그들의 반짝이는 두 눈동자다. 명함엔 떡 하니 '작가'라고 써 있는데 글씨도 못 쓰면 얼마나 신뢰감 뚝 떨어질까. 누가 뭐란 적도 없지만 괜시리 내 자존심에 신경 바짝 쓰고 한 글자씩 또박또박 쓰다보면 오히려 괴발개발에 오타 천지다. 이럴 때 스스로 위로하는 말.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도 모호한 글씨체 때문에 아내 소피아의 해독을 거쳐야만 비로소 빛나는 작품이 세상으로 나왔고, 중세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의 글씨는 판독불가능이란 별명이 붙었을 정도로 '천재는 악필'이라 하지 않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글씨 잘 쓰는 사람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그중에서도 특히, 네모공주 박경림의 글씨체는 각 잡힌 그녀의 얼굴처럼 어찌나 반듯하고 한결같은지.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내내 반에서 '서기(書記)'했어요. 덕분에 어릴 적부터 얼굴 예쁘다는 소리는 못 들어도 글씨 예쁘다는 소리는 많이 들었죠. 그런데 얼굴은 바꾸지 못해도 글씨체는 제가 노력하면 바꿔지더라고요."

가슴에 손수건 달고 초등학교 첫 입학한 경림은 같은 반 아이들 대부분이 한글을 일찌감치 떼어 맘대로 읽고 쓴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빠듯한 살림에 유치원은 엄두도 못 냈던 경림은 당연히 글은 학교에서 배우는 것으로 알았던 것.

"어린 나이에 너무 놀랐죠. 저만 모른다는 것이 부끄럽고, 속상하고. 그래서 아이들보다 무엇을 더 잘 할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다 글씨라도 잘 써야겠더라고요. 그때 다른 친구들 학원 갈 시간에 저는 집에서 글씨 연습했어요."

남들보다 읽고 쓰기를 두 배, 세 배로 열심히 하다보니 교과서의 내용이 머릿속에 쏙쏙 들어오고 저절로 공부가 됐다. 공부도 잘하고 공책 글씨도 잘 쓰다 보니 반에서 단 1명만이 할 수 있다는 서기로 냉큼 뽑혀서 칠판 글씨도 쓰게 됐는데 이때부터 자연스레 대중의 앞에 서는 준비가 시작되었던 것. 결국 고등학교 땐 3년 동안은 분필 대신 마이크를 덥썩 잡아 오늘의 그녀가 있을 수 있었다. 그런데 학창시절 언제나 유쾌하고 재미있는 성격으로 친구가 많았던 그녀의 진짜 비결은 따로 있었다고.

"시험 때는 진짜 인기가 폭발이었죠. 서로 저의 공책을 먼저 보겠다고 난리였어요. 교과서보다 보기 쉽고, 참고서보다 알찬데 누가 빌려보고 싶지 않겠어요? 하지만 대여의 조건이 있었어요. 1박2일에 우유 하나 빵 하나."

지루했던 중학교 수학시간 어느 날. 경림은 연예인이 될 작심으로 그녀만의 사인을 만들었다. 그 후, 친구들은 노트를 새로 사면 경림에게 와서 사인을 받곤 했는데 얼마 전 오랜만에 만난 그녀의 친구는 중학교 시절 경림이 사인해 준 노트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었다고. 그녀가 대스타가 될 것을 예감했다며. 그렇다면 내가 작가가 될 것을 예감한 친구가 있었을까. 경림의 예쁜 글씨체도, 예쁜 친구도 부러울 따름이다. 몹~시.

이현주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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