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를 그만뒀을 뿐 이제부터 바빠요 꼼꼼히 문학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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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사진=김성룡 기자]

인정할 건 인정하자. 인터뷰는 성공적이지 못했다.

평론가 김치수(65.사진) 선생이 35년간 몸담았던 이화여대 불문과를 지난달 정년퇴임 했다기에 9일 오후로 인터뷰 약속을 잡았다. 비평집 '문학의 목소리'(문학과지성사)도 퇴임에 맞춰 나왔다. 퇴임에 관한 소회를 묻고자 했다. 그의 퇴임은 문학사적으로도 의의가 있다.

왜냐하면 그는 한국문학사에서 4.19세대를 이끈 주인공이다. 외국 이론에 기대지 않고 한글세대의 문학을 작가론과 작품론의 입장에서 분석한 최초의 평론세대다. 마침 그와 함께 계간 '문학과지성'을 창간한 김주연(65.숙명여대 독문과) 선생도 올 여름 퇴임 예정이라는 소식을 들은 참이었다. 그러므로 첫 질문은 당연히 퇴임에 관한 소회이어야 했다. 한데 "퇴임…"이란 말이 나오기 무섭게, 선생은 말을 잘랐다.

"내가 교수 그만두는 게 중요한 게 아니지요. 5년 만에 새 평론집이 나온 사실이 중요한 게요. 내가 학교에서나 퇴임하는 거지 문학에선 아니잖아요. 앞으로는 강의 부담도 없으니 오히려 잘 된 거지, 안 그런가요?"

"아, 예, 맞습니다, 선생님. 그래도 한국현대문학사에서 4.19세대가 일선에서 물러난다는 의의가…."

"누가 일선에서 물러난대? 난 안 물러나요. 강의만 안 하는 거예요. 몇 군데서 명예교수니 어쩌니 하고 접촉하긴 했지만 다 거절했어요. 여태 바빠서 꼼꼼히 못 챙겨본 작가들 검토하기에도 바빠요. 볼 작품이 얼마나 많은데…."

퇴임에 관한 소회는 다시 꺼내지도 못했다. 대신 한국현대문학에 대한 토론만 이어졌다. 외려 흥미로웠다. 그가 열거한 작가들, 즉 여태 바빠서 꼼꼼히 못 챙겼다는 작가들 면면이 짐작보다 한참 젊었기 때문이다.

"한때 한국문학에서 서사가 실종된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아니에요. 박민규.김연수.김영하.천운영.정이현 같은 젊은 작가들로부터 새로운 서사를 발견합니다. 이들의 작품세계를 놓고 아직 의견이 분분한 걸로 알고 있어요. 그러나 난 아닙니다. 예전엔 단선적이었던 서사가 새로운 시대에 맞는 방식으로 입체화되고 변화한 것이라고 봅니다. 문학은 본래 불온하고 괘씸한 것입니다."

그는 1966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평론부문 첫회 입상자다. 문단경력 40년째인 것이다. 하여 지난 소회 한 자락 읊으실 줄 알았던 게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현역이었다. 인터뷰가 성공적이지 못했던 건, 당연한 결과였다.

"텍스트를 정확하게 분석하지 않은 비평은 당위론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텍스트를 꼼꼼히 읽는 것은 우리의 삶을 꼼꼼히 사는 것입니다."

비평에 관한 확고한 소신만 확인한 채 인터뷰는 끝이 났다. 그래도 밝힐 건 밝혀야겠다. 그의 정년퇴임을 기념하는 모임은 17일 오후 5시 이화여대 LG컨벤션센터에서 열린다.

글=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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