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무용」적 성격 뚜렷이 표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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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무대장치·미술서 대담성 발휘 변화주려는 안무의 노력 미진
문예진흥원의 창작 활성화 지원작인 이정희의 『살푸리-8』공연 (중앙일보주최 호암아트홀(3월25∼26일)은 종전 살푸리 시리즈와 많이 구별되는 점이 있다.
즉 종전의 살푸리 연작 (80년도부터)은 우리의 역사와 현실속에서 아프게 맺혀있는 것들을 짙은 제의성을 깐 서정적인 춤동작- 때론 극적일 때도 있지만-으로「풀기」위한 작업이었다면, 이번 작업은 『살푸리』란 제명에서 풍기는 바 춤을 통한 그런 원초적 정서의 호소는 없다.
대신 오늘의 기계화되고 산업화된 세계 속의 인간의 삶의 풍경들이 어느때보다 짙은 연극적 몸짓과 연극적 장면의 연출에 의해 「제시」되고 있음이 두드러진다고 할까.
그런 점에서 이번 공연은 「극무용」적 성격을 뚜렷이 표방하고 있었다 하겠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그리고 중간 5개의 장면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지난해 배정혜의 『유리도시』의 작품구조를 연상시켰다(모두 김의석 대본).
즉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서 사랑과 환상을 좇는 꿈의 세계를, 그리고 중간부분에서 문명으로 빚어지는 소외와 질곡의 세계를 대비시킴으로 해서다.
특히 그 앞뒤 부분은 침묵이 곁들여져 시적이고 환상적이었는데, 프롤로그에서 강송원은 검은양복을 입고 검은 우산을 든 채 공중으로부터 그네를 타고 무대로 내려왔고, 에필로그에서 이정희와 강송원은 수많은 조명기와 흰 우산이 무대 가까이 내려온 그 틈사이를 연인같이 거닐기도 했다.
이에 비해 중간 부분은 획일화된 삶의 모습들. 무용수들은 마치 정신병동의 환자나 수인들같이 몇개 공중으로 떠있는 상자와 낙서된 장치(김구림 미술)앞에서 넋빠진듯 등장채, 획일적으로 움직이고, 상자를 들고 나와 다양한 포즈를 취하며, 거친 호흡을 뿜고, 서로 다투며 쓰러져 버둥거리기도 했다.
이 중간부분은 주로 박은화의 솔로와 강송원·김일현을 비롯한 나머지인원들의 집단적인 몸 움직임이 대립되고 있었다.
박은화도 떨린는 듯한 마임적 몸짓, 당찬 움직임으로 한몫을 하고 있었으나 장면마다 변화를 꾀하려는 안무자의 노력은 별반 두드러지지 않았고, 특히 후반부 두사람씩 엉겨붙어 투쟁하는 부분에서는 춤꾼들의 기량은 매우 어설프게 보였다.
이번 『살푸리-8』은 이정희로서는 변화를 꾀하려 했지만 평균작의 수준이다.
그러나 장치·미술에 있어 분명한 개념과 대담한 발상을 보인 화가 김구림과 지휘전공이지만 작곡가로 첫 얼굴을 내민 김노상을 이정희가 80년대 후반의 춤작업으로 적극 끌어들인것은 우리 무용계로서는 높이 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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