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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중국 눈치 보느라…해경 22명 1년간 '범죄 혐의자' 굴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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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9월 단속 과정에 불이 난 중국어선에서 현장 조사를 하는 목포해양경찰서 관계자들. [중앙포토]

2016년 9월 단속 과정에 불이 난 중국어선에서 현장 조사를 하는 목포해양경찰서 관계자들. [중앙포토]

전남 목포해양경찰서 소속 3009함은 서남해에서 불법조업 중국어선으로부터 우리 바다를 지키는 첨병이다. 갈수록 극렬하게 저항하는 중국 선원들 탓에 승조원들이 때로 생명의 위협을 느끼지만, 묵묵히 임무를 수행 중이다. 응급환자 이송 등 구난·구조 활동에도 투입된다. 그래서 2013년 해양경찰청 최고 경비함정으로 뽑히기도 했다. 하지만 3009함 승조원 다수는 지난달 말까지 ‘범죄 혐의자’ 신세였다. 2016년 9월 전남 신안군 홍도 인근 해상에서 불법조업 단속 중 일어난 중국어선 화재가 원인이었다. 사고로 중국인 선원 3명이 숨졌다.

검찰, 단속 중 섬광폭음탄 던진 해경 사건 종결 지휘 1년간 미뤄 #한중 정상회담 앞두고도 중국과 외교적 마찰 우려해 판단 보류 #취재 시작되자 지휘 내렸지만 중국인 3명 시신 처리 제동 걸어

해경 수사팀은 당시 섬광폭음탄을 중국어선에 던진 3009함 측의 업무상과실치사 혐의에 대해 조사했다. 고속단정 2대에 나눠 탔던 해상특수기동대원 18명을 비롯해 3009함장까지 모두 22명이 피내사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았다. 수사팀은 ‘섬광폭음탄에 의해 불이 난 것으로 보이지만, 검문을 피하려고 달아나던 중국 어선에 대한 정당한 공무집행’이라는 결론을 지난해 1월 내렸다. 3009함 승조원들에게 범죄 혐의점이 없다고 판단했다.

목포해양경찰서 3009함. [사진 목포해양경찰서]

목포해양경찰서 3009함. [사진 목포해양경찰서]

그럼에도 승조원들은 이후에도 1년간 법적으로 범죄 혐의자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다. 검찰이 해경 수사팀의 내사 종결 건의에 1년간 묵묵부답 태도를 보여서다. 검찰이 종결 지휘를 하지 않은 배경은 중국이었다. 현재까지도 한국에 안치 중인 중국인 시신 3구에 대해 유족들은 1인당 400만 위안(약 6억6000만원)씩 해경이 보상할 것을 요구하며 인수를 거부하고 있다. 검찰은 해경 수사팀의 결론대로 이 사건을 '단순 변사'로 종결할 경우 유족들이 반발하며 중국과의 외교 문제로 번질 것을 우려해 시간을 끌어왔다.

문재인 대통령의 방중도 이번 사건과 맞물려 있었다. 광주지검 목포지청은 지난해 말 대검찰청에 이 사건에 대해 보고했다. 관련 부처와 논의한 대검은 한중 정상회담 차질을 우려했다. 결국 3009함 승조원들에 대한 사건 종결 지휘는 늦춰졌다. 일선 해경 사이에서는 "정부와 검찰이 중국의 눈치를 보느라 정당한 공무집행을 한 해경에게 씌워진 범죄 혐의자 굴레를 벗겨내지 않고 있다"는 불만이 터졌다.

검찰 깃발. [중앙포토]

검찰 깃발. [중앙포토]

검찰은 중앙일보 취재가 시작된 직후인 지난달 말 결국 내사 종결 지휘를 했다. 중국과의 관계가 어느 정도 정상화돼 부담이 작아졌기 때문이라는 게 주변의 해석이다. 사건이 발생한 지 1년 3개월만, 해경이 종결 지휘를 요청한 지 1년 만이다. 이 기간 목포해경도 중국의 눈치를 보며 검찰에 종결해달라고 요청하지 않았다. 검찰 관계자는 “중국인 선원들의 시신을 유족에게 인계해 중국 정부와 외교적 마찰을 피하려고 했다. 해경에겐 미안하지만, 국가적 이익을 고려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일선 해경에선 해경의 사기는 고려하지 않느냐는 반론이 나온다. "영해를 지키는 건 국가의 기본적인 책무이자 권리이고, 이 과정에서 빚어진 일을 정당하게 처리하지 않는다면 해경의 사기가 꺾일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해경의 부당한 혐의는 1년여 만에 벗겨졌지만, 중국인 선원 시신 처리는 여전히 어려운 상태다. 수천만 원에 달하는 시신 안치 비용에 부담을 느낀 해경이 무연고 시신으로 간주해 화장 등 절차를 밟으려고 했지만, 검찰이 제동을 걸었다.

지난 2016년 9월 중국어선 단속 중 불이 난 어선. [중앙포토]

지난 2016년 9월 중국어선 단속 중 불이 난 어선. [중앙포토]

검찰은 이번 사건 종결 지휘를 하며 '중국인 선원 시신 3구는 무연고 시신으로 볼 수 없으니 유족에게 인도하라'고 주문했다. 해경 관계자는 “검찰은 만약 시신을 화장 등 처리했다가 중국과의 외교 문제가 벌어질 경우 책임을 피하기 위해 원론적인 지휘를 한 것 같다”며 “해경 본청 차원에서 보건복지부 등과 협의해 시신을 무연고 시신으로 간주해 처리 절차를 진행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해경은 해명자료를 내고 "무연고 시신이 아니므로 유족 측에게 인계하라는 검사 지휘에 따라 주광주 총영사 및 유족 측에 시신 인수를 계속 촉구하고 있다"며 "인수를 거부하면 관계 기관과 처리 방안을 검토한 뒤 국내법 절차에 따라 처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중국의 유족들이 요구하는 보상금은 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목포=김호 기자 kim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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