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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돈·말 … 명절 스트레스 主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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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 같으라고요? 아이구, 생각만 해도 가슴이 답답하네요."

명절과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이 마치'스트레스'가 된 것 같다. 일에 치여 고달픈 며느리의 푸념만이 아니다.'똑똑한 요즘 며느리 모시기' 힘들다는 시어머니나, 어머니와 아내 사이에서 눈치보는 남편이나 다 명절이 무섭단다.

이번 추석엔 모두 맘 상하지 말고 즐겁게 지낼 수는 없을까. 한국가정경영연구소 강학중 소장, 하이패밀리 사랑의 가정 연구소 이의수 사무총장, 가정행복학교 김신구 연구실장, 박진생 신경정신과의원 원장 등 전문가들의 조언을 들어봤다.

*** 차례 상차림 남자도 함께 하고

"여자가 하냐, 남자가 하냐" "큰 동서가 하냐, 작은 동서가 하냐" 등 일거리를 놓고 빚어지는 갈등은 명절 분위기를 무겁게 하는 첫째이유다. 전문가들은 "과감한 다운사이징과 아웃소싱으로 일의 양을 줄이라"고 조언한다.

최근 한국여성단체협의회가 주최한'내가 바꾸는 명절 수기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이흥화(59.서울 동대문구 청량리2동)씨도 "명절 음식의 양을 반으로 줄이면서 명절이 가족 모두에게 행복한 축제가 됐다"고 밝혔다.

명절 음식을 절반만 준비하니 일손도 절반만 필요했다. 이씨는 두 아들에게 "한명씩 돌아가며 처가에 가서 명절 준비를 하라"고 제안했다. 자연스레 '평등 명절'까지 이뤄진 셈이다.

명절 음식을 주문해서 먹거나 외식을 하는 것도 일거리를 줄이는 방법이다. 최근에는 차례음식 주문업체나 벌초대행업체 등도 등장해 일손을 덜고 있다.

여성에게만 집중된 일이 속앓이의 핵심이 되는 경우도 많다. "곧잘 집안일을 돕던 남편이 시댁만 가면 물 달라, 과일 달라며 꼼짝 안한다"는 불만도 나온다. 한국여성민우회는 올해 '웃어라 명절'캠페인의 하나로 남성들의 '설거지 하기'실천 서약을 받고 있다.

하지만 가부장적인 명절문화를 하루아침에 바꾸기는 불가능하다. 전문가들은 여성들에게 "자기 남편.아들부터 한걸음씩 변화시켜 나가는 지혜를 발휘하라"고 조언한다.

*** 형제간 형편 생각해 부담 나눠

분수에 맞게 음식.선물 준비를 하는 것이 돈 문제를 해결하는 첫째 방법. 형제간의 경제력 차이 때문에 갈등이 생긴다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쪽에서 어려운 쪽을 배려해야 해결이 된다. 이런 경우 부모님의 명절 선물로 현금은 피하는 게 좋다.

현금은 평소에 용돈으로 드리고 명절 때는 액수가 쉽게 비교되지 않는 품목으로 정하자. 명절을 주관하는 가정의 경제적 부담이 만만치 않으므로 이에 대한 고려도 필수다.

찾아가는 쪽에서 목돈이 드는 고깃거리나 과일을 준비해 가는 것도 한 방법. 또는 직접 돈을 전하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 이 경우엔 돈을 받는 사람이 "내가 돈 받고 일하는 사람인가"라는 식의 불쾌한 생각이 들지 않도록 충분히 감사의 뜻을 표한다.

명절을 계기로 만난 가족들이 외식이나 나들이를 하면서 드는 비용으로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질 수도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최미영(36)씨 가족은 가족통장을 만들었다.

1남2녀인 최씨 남매가 매달 5만원씩 모아 부모님 생신과 명절 때 외식 비용으로 사용한다. "외아들인 큰오빠가 계속 부담하다 보니 시누이.올케 사이가 점점 어색해지더라"는 것이 가족통장을 만든 배경이다.

*** "왜 이리 늦었니" 등은 피해야

오랜만에 모인 가족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말은 대부분 '비교'와 '자랑'이다. 형제간의 비교, 다른집 자녀.며느리와의 비교, 집집마다 다른 명절 풍속에 대한 비교 등의 말 속에는 '가시'가 들어있기 쉽다. 혼기를 넘긴 독신남녀나 이혼한 가정 등이 함께 모인 자리에서는 특히 주의해야 한다.

자랑도 정도가 지나치면 다른 사람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 특히 해외여행.골프.명품 등 경제력을 과시하거나 아이들 성적 자랑은 자제하는 것이 좋다.

20~40대 주부들로 이뤄진 본지 통신원들은 명절 때 듣기 싫은 말로 "왜 이렇게 늦게 왔느냐" "애비 얼굴이 영 안 좋구나" "일년에 고작 한두번 하는 일 갖고 뭘 그리 난리냐"등을 꼽았다.

전문가들은 "서로 칭찬과 감사 등 덕담을 주고 받으면서 긍정적인 관계를 만들 수 있다"며 "갑자기 덕담을 주고 받는 것이 쑥스러우면 감사 릴레이나 유머 릴레이 등의 이벤트를 벌여 보라"고 권했다.

권희은(29.전남 여수시 문수동)씨는 명절 때 시댁식구들이 모이면 '롤링노트' 이벤트를 벌인다. 식구들 이름이 적힌 노트를 각각 준비한 후 돌아가면서 그 노트의 주인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적는 것. 서운한 일도 글로 적으면 한결 부드럽게 전달된다.

지난해 추석에 권씨는 용기를 내 시아버지와 시숙의 롤링노트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여자들은 명절 때마다 엄청난 노동 때문에 정을 느낄 여유가 없어요. 기쁠 때나 힘들 때나 괴로울 때나 항상 함께하겠다고 한 결혼 서약을 남자들이 지켜주셨으면 해요." 권씨는 "지난 설날 시아버지는 제기를 닦고 시숙은 전을 부치는 등 효과가 컸다"고 말했다.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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