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은행의 독립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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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중앙은행인 한국은행 총재가 또 바뀌었다. 4년 임기 중 1년 10개월을 남겨놓고 있다. 건국이래 한국은행 총재중 임기를 채운 사람은 두사람에 불과하다.
한국은행법에 의해 임기가 엄연히 보장되어 있는데도 임기를 채운 한은총재가 두사람밖에 안된다는 것은 중앙은행이 얼마나 정치 바람을 많이 탔으며 중앙은행 총재가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가를 단적으로 나타낸다.
한국은행 총재는 그야말로 금융계의 총수로서 그에 상응하는 법적, 도덕적 권위를 갖고 또 존중받아야 한다.
한은법에도 『총재는 고결한 인격과 금융에 관한 탁월한 경험을 가진자 중에서 재무장관의 제정에 의해 대통령이 임명』토록 되어 있다.
그런 중앙은행 총재가 번번이 임기를 못 채우고 타의로 물러가는 사태는 결코 바람직 하지 못하다.
중앙은행의 독립성 보장과 관련, 앞으로는 한은총재의 임기가 존중되는 관행이 확립되어야겠다.
물론 본란이 한은총재의 임기문제를 거론한 것은 하나의 원칙론을 제기한 것이지 전임 총재가 그대로 있어야만 한은의 독립성이 보장되고 통화가치의 안정이 더 잘된다는 뜻은 아니다.
신임 김건 총재는 한은의 정통파로서 한은총재로서는 드물게 고결한 인격과 금융에 관한 탁월한 경험을 가졌을 뿐 아니라 중앙은행의 기능과 역할에 대해 소신이 뚜렷하다고 평가되는 만큼 기대되는바 크다.
특히 제6공화국의 탄생과 더불어 서둘러야 할 중앙은행의 독립성 강화와 금융의 민주화, 자율화, 현대화등의 벅찬 과제를 안고 출발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신임 총재는 민주화 시대의 중앙은행 총재상을 만들고 정립해야 할 무척 보람있으면서도 힘드는 역할을 맡은 것이다.
김총재가 가장 먼저 서둘러야 할 일은 한은의 기능을 정상화하는 일이다.
한은법 3조는 한은의 중요 목적을 ①국민경제 발전을 위한 통화가치의 안정 ②은행 신용제도의 건전화와 그 기능향상에 의한 경제발전과 국가자원의 유용한 이용의 도모에 두고 있는데 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선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제까지의 실태를 보면 한은은 중립적 통화 신용정책을 펴지 못하고 정부의 뜻에의해 타율적으로 움직여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중앙은행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못한 것이다.
「정부 주도에 의한 개발」 분위기 탓도 있지만 중앙은행 스스로가 자포자기한 면도 없지 않았다. 한은법보다 운용이 더 문제였다. 때문에 항상 성장보다 통화가치의 안정이 뒷전으로 밀리고 금융정책도 장기적 비전보다 그때 그때의 땜질식 대응이 많았다.
그러나 이젠 그런식으로는 안되게 되어 있다. 새시대를 맞아 민간주도 경제의 창달을 위해선 금융산업의 건전한 발전이 무엇보다 긴급하고 이를 위해선 한은이 제 할 일을 제대로 해야 한다.
현재의 물가부안, 금융의 왜곡, 기업 재무구조의 취약, 통화관리의 방만성 등 여러 경제현안 문제를 하정하는덴 한은의 기능회복이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한은의 기능회복엔 무엇보다 중앙은행 총재의 용기와 경륜이 중요하다.
큰 기대속에 등장한 김건 충재의 앞날을 주시코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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