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 영어교육 금지' 여당 의원들과 만찬 뒤 입장 변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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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서울 종로구 재동 롯데백화점 직장어린이집에서 방과후 영어수업을 듣고 있는 아이들. 장진영 기자

지난 5일 서울 종로구 재동 롯데백화점 직장어린이집에서 방과후 영어수업을 듣고 있는 아이들. 장진영 기자

교육부가 유아 영어교육 금지 정책을 1년 유예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갑작스러운 입장 변화의 배경이 무엇인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교육계 안팎에서는 오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심이반을 우려한 여당의 설득이 주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교육부의 정책에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은 지난해 8월 ‘수능 절대평가 1년 유예’에 이어 두 번째다.

6월 지방선거 민심이반 우려해 '유예 요청' #여당 의원·보좌진 수차례 시기 조율 건의 #"여론 악화에 청와대도 우려 표했을 것" #야당 "김상곤 부총리 '교육독재' 심각"

이런 변화의 움직임이 보이기 시작한 건 지난 9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여당 의원들과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만찬 자리였다. 이날 저녁 식사 자리에 참석했던 박경미 의원은 15일 “여당 차원에서 학부모와 교사 등 현장 의견을 수렴한 결과를 김 부총리에게 전달했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의원들은 한목소리로 더 많은 의견수렴과 합의 과정이 있으면 좋겠다고 건의했고 김 부총리도 현장 의견을 충분히 듣겠다고 답변했다”고 밝혔다.

 교문위 여당 간사인 유은혜 의원도 이날 만찬 직후 “여당 의원들이 시행 유보를 건의한 것은 정책을 반대하는 게 아니라 정책 성공을 위해 학부모들을 상대로 충분한 설명이 필요하다는 취지였다”고 말했다. 이날 김 부총리는 “문제의식에 공감한다”면서도 즉답은 피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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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날 만찬에 앞서 신익현 국장 등 교육부 정책 담당자들은 교문위 소속 여당 보좌관들과 실무회의를 가졌다. 회의에 참여했던 한 보좌관은 “보좌진 대부분이 유보 입장을 밝혔지만 실·국장들은 완강한 입장을 보였다”며 “이날 저녁 만찬 자리에서 김 부총리가 의원들의 이야기를 들은 후에야 입장이 변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교육부는 이날 저녁 식사가 있고 난 뒤 며칠 뒤(12일) 유아 영어교육 금지 정책에 대한 최종 입장 발표 시기를 1월 말에서 이번 주로 앞당겼다. 익명을 요청한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부정 여론이 높아지자 청와대에서도 정책 시기에 대한 입장을 전달했을 것”이라며 “직접 ‘유예하라’고는 못해도 우려 의사는 확실히 전달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유아 영어교육 금지 정책이 알려지고 난 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교육부를 비판하는 글이 줄을 잇기도 했다.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온 유아 영어교육 금지 비판 글. [중앙포토]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온 유아 영어교육 금지 비판 글. [중앙포토]

 이처럼 청와대와 여당이 교육 문제에 신경을 쓰는 이유는 문재인 정부의 첫 평가 성격인 6월 지방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특히 현 정부의 주요 지지층인 30~40대는 교육 정책의 주요 대상자이기 때문에 여권에선 민감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 8월 한국갤럽 조사에서 정부의 분야별 정책 지지도 중 교육(35%)이 꼴찌를 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당시에도 교육부는 수능 절대평가 실시를 강하게 주장했지만, 여론의 반발에 부딪혀 1년 유예키로 결정했다.

  여권의 이런 조치는 6월 교육감 선거 등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비판의 소지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성격이 강하다. 자유한국당의 한 관계자는 "외국어고·자사고 폐지, 수능 절대평가와 대입 학생부종합전형 강화 등 교육 분야는 공격할 거리가 넘치고 넘친다"며 "특히 최근엔 김상곤 부총리의 '교육독재'에 대한 야당의 반감이 매우 심하다"고 말했다.

윤석만 기자 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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