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양」과 함께 「본빌적 변화」기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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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25일로 노태우 대통령이 취임 한달을 맞았다. 임기5년중 불과 한달을 지내놓고 새 대통령의 능력이나 이미지를 평가한다는 것은 너무 이른감이 없지 않다.
그러나 노대통령은 16년만에 국민들이 직접 뽑은 대통령이라는 점 등에서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일거수 일투족이 비교적 국민들의 깊은 관심을 끌고 있다.
특히 당장 눈앞에 회답을 제시해야 할 전경환씨 사건이란 골치아픈 숙제가 있고 또 한달후면 그의 국정운영 기반을 좌우합 총선을 치러야 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런 것 같다.
말하자면 대통령 자신이나 국민 모두가 여유있게 관찰하고 점수를 매길 틈도 없이 뭔가를 속히 보여주고 그에 대한 평가를 내려야 하는 숨가쁜 정치일정속에 맞물려 들어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이같은 정황때문인지 노대통령은 짧은 시간에 비해 상당히 다양하게 달라진 자신의 스타일을 보여 주었다.
그 첫째가 권위주의를 청산한 「보통 대통령」의 모습을 보이려는 노력이다.
이는 박정희·전두환 대통령을 거쳐오는 동안 국민의 감각과 유리되어 관행화된 「통치」나 「군림」의 대통령상을 외형적인 것부터 깨고 들어감으로써 공감을 얻고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려는 것이다.
이같은 시도는 특히 많은 부분이 상대적으로 국민적 인기가 낮았던 전두환 전대통렴과 정반대의 스타일로 나타나 쇄신적 측면못지 않게 양자관계를 구구하게 억측하는 빌미를 제공하기도 했다.
어쨌든 국회의사당 뜰에서 열린 취임식의 내용과 절차, 청와대의 공개, 원탁각의, 「각하」등 권위적 용어의 배척, 요란하지 않는 경호, 부인의 공개석상 등장 자제등은 대통령과 국민들과의 거리를 좀히는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시대의 흐름과 괴리된 권위주의적 양태를 대통령 스스로 벗어나 좀더 국민곁에 가까이 오겠다는 것을 싫어할리 만무하고 그것이 항심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 국민들의 기대이기 때문이다.
노대통령은 또 외형상의 스타일창출 못지않게 정책결정 과정 및 정국운용 패턴면에서도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가장 먼저 공직자 사회에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는 것은 인사정책. 우선 노대통령이 차관급 인사에서 대폭적인 내부승진 인사를 단행하고 유신사무 관제를 폐지함으로써 공무원 사회의 사기가 크게 고양되고 있는 분위기다.
그는 또 인사권을 과감하게 하부에 이양했을 뿐 아니라 각종 인사에 있어 당해 조직의 서열·평판을 제도적으로 존중하게끔 지시했다. 대통령 스스로 정실·파격인사를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장·차관도 여기에 따라줄 것을 당부했다.
이같은 인사기조는 대학총-학장·금융계·정부투자기관 인사에 즉각 반영되어 최근 제 일은·국민은행장이 당해 은행출신에서 뽑혔고 외부인사 (특히 군출신)의 정부투자기관 영입이 현저히 줄고 있으며 교수·동창의 신망을 얻지 못하는 총·학장의 탄생이 어렵게 되어가고 있는 형편이다.
또 하나 두드러진 노태우 스타일은 정책결정 과정의 공개원칙이다.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무회의의 토론내용과 국정보고 내용이 비교적 소상하게 발표되고 있으며 관계 이해집단의 참여없는 정책결정을 하지말라는 지시가 되풀이 강조되고 있다.
그 결과 농민대표가 참여하는 농정토론회(3월 14일)를 비롯, 각종 세미나 정책토론회가 활성화되고 있으며 대통령은 장·차관들이 TV나 언론에 나가 정책을 설명하고 설득하는 능력을 고과에 크게 반영하겠다고 공언했다. 이같은 분위기는 일선 경찰서에까지 전파되어 경찰 간부가 기꺼이 TV 인터뷰에 응하고 형사들의 언론 기피증이 점차 개선되고 있다.
그러나 스타일의 개선이 문제의 본질해결 능력과 일치할지는 속단할 수 없을 뿐아니라 새정부 출범후 팽배되고 있는 이같은 기대감이 자칫 잘못하면 더 큰 실망으로 둔감할 가능성도 없지않다는 것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노대통령은 취임후 첫 청와대 국무회의에서 당면 현안으로 물가안정, 강도·절도단속, 개방압력 대처등을 최우선적으로 해결하도록 지시했다.
그러나 지난 10일 내놓은 정부의 물가안정 종합대책은 「응급조치」에 그칠 것 같은 전망이다. 물가를 잡으려면 재정긴축 등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함에도 선거를 의식한 인기관리상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노스타일이 진짜 언행일치하려면 공약사업을 전면 재검토하고 국민들에게 『대통령선거 때 급한 김에 여러가지 약속을 했지만 사정이 어려우니 완급문제를 다시 생각해봐야겠다』고 솔직이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물가문제를 계속 미봉책으로 대처하다간 다른 좋은 「소리」에 대한 신용까지 떨어질 우려가 없지 않다.
시장개방 문제· 쇠고기수입 문제등도 선거를 의식, 문제를 덮어 두기에 급급한 인상이고 치안본부가 강도·폭력사범 일제소탕령을 벌였으나 사회법리적 환경때문인지 검거실적은 아직 신통치 않은 편이다.
전경환씨 사건도 국민기대에 상응한 정부의 구체적 의지가 표시되지 않고는 국민의 이해를 구하기가 어려운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취임 1개월만에 이룩한 노대통령의 새바람이 스타일의 차원을 넘어 문제해결 능력면에서 공신력을 얻기까지는 아직도 무수히 많은 고개를 넘어야 할 것 같다.

<전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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