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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조 더 걷힌 세수 풍년 역설 … 민간 투자할 돈이 나라 곳간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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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나라 곳간이 차고 넘친다. 2016년에 이어 지난해에도 ‘세수 풍년’ 기조가 이어졌다. 정부가 애초 예상보다 세금을 더 거뒀다는 뜻이다. 달리 보면 정부가 세금이 얼마나 걷힐지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다는 의미도 된다. 국고에 들어올 수입 전망이 어긋나면서 민간에서 써야 할 돈을 정부가 가져간 꼴이 됐다. 이는 민간 지출을 줄여 경기를 위축시킬 수 있다. 세수 호조를 긍정적으로만 보기 어려운 이유다.

세수 예측 빗나가 11월에 이미 초과 #3년째 목표 넘어서 추경 연례화 #가계·기업 지출 줄게 돼 경기 위축 #“정부 수입만 늘어 … 증세 재고해야”

10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국세 수입은 251조9000억원으로 집계됐다.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21조4000억원 늘었다. 정부의 목표 세수 대비 실제 걷은 세금의 비율을 뜻하는 세수진도율은 100.3%를 기록했다. 12월 한 달 실적을 빼고도 지난해 연간 세수 목표치(추가경정예산 기준 251조1000억원)를 8000억원 넘겼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3대 세목인 소득세(69조8000억원)·법인세(58조원)·부가가치세(65조6000억원)의 지난해 1~11월 세수가 모두 일찌감치 연간 정부 목표치를 넘었다. 지난해 세수는 270조원 안팎이 될 전망이다. 정부 예상보다 20조원 가까이 세금이 더 걷힌 셈이다. 정부는 소비 회복과 수출 호조를 세수 증가의 이유로 꼽았다.

이런 세수 호조가 바람직할까? 꼭 그런 건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는 “세수를 정확히 예측했다면 경기 대응이나 일자리 창출 등에 적기에 재정을 투입할 수 있었다”라며 “잘못된 세수 예측으로 재정을 효율적으로 쓸 기회를 놓친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정부의 세수 예측 실패가 해마다 반복된다는 점이다. 2012~2014년에는 정부가 예산을 짜면서 세수와 직결되는 경상성장률(실질 경제성장률+물가상승률)을 낙관적으로 잡았다가 실제 성장률이 예상치를 밑돈 탓에 ‘세수 펑크’를 냈다. 부족분은 빚으로 메웠다. 국가 부채가 늘어난 이유다.

2015년부터는 정반대가 됐다. 지난해까지 매년 세수가 예상보다 더 들어오고 있다. 이렇게 세수 예측이 틀리니 추경 편성도 연례화했다. 2013년부터 정부는 2014년을 제외하고 해마다 추경을 편성했다. 거의 매해 나라 살림의 틀을 중간에 고쳤다는 얘기다. 김갑순 동국대 회계학과 교수는 “경제 환경의 변화 및 국세청의 NTIS(차세대국세행정통합시스템) 도입 등 세수에 영향을 끼치는 여러 요인을 추계에 반영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라며 “나라 살림의 근간인 세수 예측이 빗나가면 정부의 경제·세정 정책의 신뢰도에 금이 갈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세금이 잘 걷히는 가운데 정부가 굳이 법인세 등 일부 세율을 올려 민간으로부터 돈을 더 걷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렇지 않아도 가계·기업·정부 경제 3 주체 가운데 정부 소득만 늘어나는 추세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16년 한국의 전체 처분가능소득에서 정부가 차지하는 비중은 23.1%다. 전년 대비 1.1%포인트 늘었다. 같은 기간 가계의 비중은 57.2%에서 56.9%, 기업의 비중은 20.8%에서 20%로 줄었다.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은 “정부가 세금을 너무 많이 걷으면 민간에서 돌아야 할 돈이 상대적으로 생산성이 떨어지는 공공부문에 몰리게 돼 전체 경제의 효율성을 떨어뜨린다”라고 말했다. 권 원장은 “민간에서 돈이 돌게 해 경기를 활성화하고, 장기적인 세수 확보를 위해서도 세율 인하를 통해 기업의 경영 활동을 북돋는 편이 낫다”라고 말했다.

세종=하남현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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