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을 사고로 먼저 보낸 아버지가 봉사단체에 전달한 보상금

중앙일보

입력

고 정성훈.[사진 한기철 도선사]

고 정성훈.[사진 한기철 도선사]

부산의 연탄배달 봉사단체인 부산 연탄은행 강정칠 목사는 지난 9일 오후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지난 12월 4일 중국의 한 항구에 정박한 컨테이너선에서 추락해 숨진 정성훈(23)씨의 아버지였다.

3등 항해사로 2번째 승선 뒤 중국에서 불의의 추락사 #숨진 정성훈씨 아버지 보상금 500만원 부산연탄은행에 #“아들 위해 귀하게 사용해 달라.적지만 이해해달라”고

택시 기사로 알려진 아버지는 아들의 사망 소식과 함께 “아들이 매월 2만원씩 연탄은행에 후원하기로 약정했다고 들었는데, 매월 2만원씩 빠져나가면 마음이 너무 아플 것 같아서 받은 보상금에서 500만원을 보내겠다”고 했다.

이어 “좋은 곳에 잘 사용해달라”는 부탁과 함께 “연탄은행에 다 드리면 좋겠는데 성훈이가 야구를 너무 좋아해 해양대 야구동호회에 기부하고 다른 몇 군데에도 도와주려고 한다. 너무 적지만 이해 바란다”고 덧붙였다.

강정칠 목사가 페이스북에 올린 정성훈씨와 아버지의 사연.[페이스북 캡처]

강정칠 목사가 페이스북에 올린 정성훈씨와 아버지의 사연.[페이스북 캡처]

강 목사는 그러나 “마음이 아파 돈을 받을 수 없다. 더 귀한 다른 곳에 사용해달라”며 거절했다. 이에 아버지는 “성훈이를 봐서라도 꼭 받아달라”며 물러서지 않았다. 강 목사는 간절한 아버지의 요구에 따라 결국 돈을 받기로 했다.

이 같은 사실은 강 목사가 “성훈이 부모님의 깊은 뜻을 알리고 성훈이를 위하는 일이라 생각한다”며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그렇지만 성훈이 아버지는 “더는 알려지는 걸 원치 않는다”며 기자와의 통화를 거부했다.

강 목사는 10일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고 따뜻한 세상을 바라는 아버지의 마음이 전해져서 제가 통화를 하면서 울자 성훈이 아버지가 오히려 위로했다”고 전했다.

성훈씨는 지난해 2월 한국해양대를 졸업한 뒤 해운선사에 취업해 2번째 컨테이너선에 승선했고, 부산신항 출항 이틀만인 기항지 중국에서 불의의 사고로 숨졌다. 당시 목격자가 없어 실족에 의한 추락사로 추정됐다.

이달 하순 한국에 귀항예정이었던 성훈씨는 평소 멘토 역할을 한 한기철(59) 도선사가 연탄은행에 봉사와 후원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 출항 직전 “미약하나마 보탬이 되고 싶다”면서 매달 2만원을 기부하기로 약정했다고 한다.

한씨는 “성훈이는 해양대 시절 4년 동안 장학금을 받고 수석으로 졸업했다”며 “한 학기에 한 번 정도 진로문제 등을 의논하며 식사를 했고, 수시로 카카오톡 등으로 연락을 주고 받았다”며 “성훈이가 저와 같은 도선사를 꿈꾸고 인성까지 훌륭했다”고 기억했다.

부산 연탄은행은 성훈씨 아버지의 기부금을 저소득층 어르신과 아이들의 음식 대접, 연탄 제공, 교복 지원 등에 쓸 계획이다.

부산=황선윤 기자 suyohwa@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