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국 사실 공항 직원도 몰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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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새마을운동 중앙본부 비리 폭로→전경환 전회장의 극비 출국→전두환 전대통령의 정식수사 요청으로 이어진 「새마을 비리 드라마」는 20일 전경환씨(46)가 출국 45시간 40분만에 김해공항을 통해 귀국함으로써 제1장의 막을 내렸다.
관계기관의 철저한 보안 속에 일반인의 눈길이 뜸한 일요일 오후 김해공항을 통해 귀국한 전씨의 「출국∼귀국 46시간」을 추적해 본다.
◇귀국=전씨를 포함, 승객 2백 62명이 탑승한 오사카발 KAL753편(A300)이 김해공항에 도착한 것은 예정보다 14분 늦은 오후 4시 34분.
항공기가 도착하기 전 공항 안내판에 게시된 KAL 753편의 탑승자 명단에는 의도적인지는 확인되지 않지만 전씨의 이름이 전경황(CHUN KYUNG HWANG)으로 잘못 표기돼 있었다.
전씨는 도착후 미리 연락을 받고 대기 중이던 기관원 3명의 철저한 보안 속에 법무부 입국수속과 세관통관 수속을 직접하지 않고 기관에서 대리수속, 공항 입국 직원들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일반인의 눈을 피해 공항청사를 빠져나갔다.
입국 검사대에 근무했던 김해공항 여구담당직원 박모씨는 주인 없는 가방 1개가 검사대에 올려져 이 가방을 검사했으나 가방 안에는 세면도구·내의 외에 별다른 물건이 없었다며 이 가방은 곧 다른 사람에 의해 옮겨졌는데 가방의 주인이 전씨인 것을 뒤늦게 알았다고 말했다.
공항을 빠져나온 전씨는 귀빈실 주차장에 대기하고 있던 한 수사기관의 승용차에 탑승, 공항부근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경남 ××∼1187호 검정색 레코드 로열 승용차 편으로 서울로 향했다.
◇기내=관광차 한국에 오면서 전씨의 옆 좌석인 3B에 앉았던 일본인 「우에다」씨(40, 上田耕德·부동산업)는 전씨가 이륙 10분전쯤 승객 중 맨 마지막으로 헐레벌떡 탑승, 이륙 후 승무원이 준 한국신문을 괴로운 표정으로 뒤적이며 보다 피곤한 듯 이내 잠들었다고 말했다.
전씨는 가방을 든 40대 남자(일본인 「나카야마」씨인 듯)와 함께 탑승했으며 이 남자는 가방을 좌석 위 선반에 얹어두고 「사장님」이라고 나직이 말하며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 비행기에서 급히 내려갔다는 것.
「우에다」씨는 『기내에서 말을 붙여 보려 했으나 줄곧 곤히 잠들어 말을 걸지 못했다』며 『승무원들이 아는 체 않고 좌석 부근에는 일본인이 타고 있어 전씨를 쳐다보는 사람도 없었으며 자신은 한국인사장인 것으로 여겼으며 전경환씨인 줄은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서울도착=전씨가 탄 검정색 레코드 로열 승용차는 경부고속도로∼중부고속도로를 거쳐 오후 9시 27분 서울 상일동 중부고속도로 동서울 톨게이트 상행선 2번 입구에 도착했다.
전씨는 다소 피곤한 표정으로 뒷좌석 오른쪽에 몸을 비스듬히 기댄 채 앉아 있었으며 전씨의 왼쪽과 앞좌석에는 40대로 보이는 양복차림의 남자 2명이 앉아 있었다.
전씨는 톨게이트에서 일일이 차안을 들여다보며 대기하던 보도진이 얼굴을 알아보고 『전경환이다』라고 소리치자 급히 양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상체를 굽혔으며 순간 승용차는 검표원에게 통행표를 내지도 않은 채 황급히 빠져나가 올림픽 대로를 따라 시속 1백40km 이상의 빠른 속도로 암사동 쪽으로 질주했다.
◇전씨 집=서울 팔판동 115의 58 전씨 집에는 전씨의 부인 손춘지씨(44)·둘째딸(18·여고3)·가정부 2명·운전사 등 5명이 대문을 굳게 닫은 채 집을 지켰다.
오후 10시쯤 30대 남자가 나와 기자들에게 『전씨가 오후 9시 55분쯤 부인 손씨에게 전화를 걸어 서울에 왔으니 오늘은 쉬고 내일 오전 10시 쫌 귀가하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전씨의 부인 손씨는 21일 오전 8시30분 자택 인터폰을 통해 기자들에게 『오늘 0시 10분쯤 남편이 공중전화로 연락, 집에 들어오겠다고 했으나 집 앞에 기자들이 많으니 오늘은 아무데서나 쉬시고 날이 밝은 뒤에나 귀가하시라고 권했다』고 말했다.
손씨는 또 『남편이 평소보다 우울한 목소리였다』고 전한 뒤 둘째딸은 보도진을 의식, 이날 등교시키지 않기로 결정하고 학교(서울예고)에 전화로 통보했다고 밝혔다.
손씨는 기자들에게 『어젯밤을 지새느라 고생하는 것 같아 커피를 한 포트 끓여 놓았으나 인원이 너무 많아 드리지 못했다』며 『남편이 귀가 전에 전화로 귀가 사실을 알려오면 이를 집밖의 보도진에게 알려주겠다』고 약속하기도.
21일 오전 8시40분쯤에는 전씨 자택에 「평남새마을협의회장」이라고 신분을 밝힌 이응두씨(64)가 승용차를 타고 왔다가 『전씨가 아직 귀가하지 않았다』는 가족들의 말에 그대로 돌아가기도 했다.
이씨의 양복 옷깃에는 새마을 배지가 보이지 않게 뒤집어진 채 부착되어 있어 궁금증을 자아내기도.
한편 20일 오후 7시50분 쯤에는 새문안교회 신도라고 밝힌 40대 주부2명이 전씨 집을 방문, 부인 손씨를 위로하는 기도를 했으며 이들이 오후 9시쯤 옆 골목으로 귀가하려 하자 손씨가 피신하는 것으로 오인한 보도진 30여 명이 몰려드는 해프닝을 빚기도 했다.
◇일본대판=전씨는 지난 18일 오후8시 대판공항에 도착했으나 이후 20일 오후 김해로 돌아가기까지의 행적은 아직까지 수수께끼에 싸여있다.
다만 l8일 대판에 도착한 직후 한국 총영사관 부근에 있는 닛코(日航)호텔에 본명으로 투숙했으나 일본 기자들의 전화가 몰려오자 다음날인 19일 전씨와 가장 친밀한 관계에 있는 긴키(近畿)대학 「마에」(前一己)교수의 친구 집에 짐을 맡기고 확인되지 않은 2∼3개소를 오간 것으로 알려져 있을 뿐이다.
전씨가 대판에 도착한 18일 밤 이후 「마에」교수도 자신의 숙소인 근기대학 회관을 벗어나 있었으며 이 회관의 관리인은 『18일 이후 전혀 연락이 닿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또 전씨가 과거 대판을 방문할 때마다 벤츠를 동원, 영접하는데 적잖은 비용을 부담해 왔던 재일 교포 박모씨도 18일 이후에는 외부인사와 연락을 끊고 있어 전씨가 일본에 체재하는 동안 이들과 모처에서 만난 것으로 추정된다.
전씨는 20일 오후 2시40분 KAL753편이 김해로 떠나기 20분전에 대판공항에 혼자 나타나 탑승수속을 밟았다.
대판공항은 연휴를 즐기는 출입국 관광객으로 몹시 붐볐으며 전씨는 예약 없이 KAL 데스크에 나타나 2만8천1백 엔을 지불하고 본명으로 된 김해항 탑승권을 샀다.
이 비행기에는 1등석 구별이 따로 없었으며 전씨는 3A 좌석을 지정 받았다.
회색 싱글에 티셔츠 차림의 전씨를 알아본 KAL 현지직원 「나카야마」씨(40·中山窓一)가 전씨에게 안내하겠다고 말하자 그는 눈인사만 한 채 007가방(삼손나이트) 1개를 들고 비행기 좌석까지 따라 갔으며 안내가 끝난 「나카야마] 씨에게 『미안합니다』라고 한국말로 인사했다.
「나카야마」씨는 수행원 없이 공항 데스크에 혼자 나타난 전씨가 매우 우울한 표정이었다고 말했다.
【대판=최철주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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